질레트(Gillette)는 120년 전통의 면도기 제조업체다. 그들은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면도기를 만들었고,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으며, 비싼 가격에 팔았다. 하지만 최근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은 70%대에서 20%대로 떨어졌다. 그 이유는 바로 면도기 구독 서비스 제공업체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 때문이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면도기를 구독 서비스로 제공, 한 달에 1달러만 내면 집으로 면도기와 면도날 4개를 정기적으로 보냈다.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에 32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며 질레트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위 사례는 구독경제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독경제란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유통 서비스를 말한다. 책 『구독, 자유를 팝니다』의 저자 김상지는 “구독 서비스 모델은 신생 기업들이 시장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며 “영리한 스타트업들은 구독 모델로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 머물러 있던 전통 기업들을 무릎 꿇렸고, 특히 2020년 초부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는 오히려 특수를 누리며 시장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구독 모델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고객의 니즈를 구체화하고 세분화했기 때문이다. 달러 쉐이브 클럽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면도날을 자주 구매해야 하는데 귀찮고 가격 또한 부담스러운 고객의 욕구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질레트처럼 연구개발이나 마케팅에 돈을 투자하는 대신 100% 온라인 주문과 정기배송으로만 판매하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창업자 마이클 더빈이 직접 출연한 1분 30초짜리 홍보 영상이 광고의 전부였다. 이 영상에서 더빈은 사용자가 겪는 면도기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사의 제품을 홍보했다.
이에 대해 김상지는 “이로써 달러 쉐이브 클럽은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랬기에 1달러에 ‘면도기+면도날 4개’라는 제품 구성도 가능했다”며 “이후 회사는 연간 매출 2억 달러까지 성장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16년 7월 유니레버에 10억 달러에 인수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구독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김상지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에 주목한다. 사물인터넷이란 사물에 센서와 프로세서를 장착해 정보를 수집하고 제어 및 관리할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는 “스마트한 디바이스들이 등장하고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구독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무궁무진하다. 기업은 스마트한 사물들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구독 서비스로 연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LG유플러스의 스마트홈 서비스는 월정액(6,600~1만1,000)을 지불하면 보안 카메라, 문 열림 감지 센서, 침입 감지 센서, 공기 질 모니터링을 통한 경고 및 알림 서비스 등을 제공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노인, 아동, 반려동물과 같이 케어 대상에 따라 차별화되는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물인터넷 시대와 구독경제가 효과적으로 맞물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상지는 “구독 모델은 기업들의 사고방식과 비즈니스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기업들이 구독 모델을 도입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소비의 중심이자 주체인 고객에게 눈을 돌리고 제대로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며 “구독 모델을 통해 소비자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제안받는다. 그것은 비용 측면의 혜택일 수도 있고 맞춤 서비스의 편리함 또는 지속적 즐거움과 새로움일 수도 있다. 구독 모델은 이렇게 기업과 소비자 양쪽 모두의 지지를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