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요" SF 소설가 정소연
"소수자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요" SF 소설가 정소연
  • 심완선 SF 전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2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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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F를 좋아해 :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독서신문에서 『우리는 SF를 좋아해』(민음사)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초엽, 정세랑, 김보영, 듀나, 배명훈, 정소연 등 국내 유명 SF 작가 6인이 인터뷰이로 참여했습니다. 책 내용 중 하이라이트 부분을 공개합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정소연 작가

SF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리는 장르라고 합니다. SF 전문 칼럼니스트 심완선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여섯 명의 SF 작가를 직접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힘을 묻고 듣습니다. 글쓰기, 새로운 세계의 창조, 마감과 함께하는 작가의 일상, 그리고 무수한 가능성들의 우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는 올해 봄 단행본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Q. 몇 년 전 미국에서 한국 SF의 특성에 관한 강연을 하셨죠. SF 연구자이자 UC 리버사이드 영문학과 교수인 셰릴 빈트의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국내에 번역되면서 한국어판 출간 기념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소연 님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소연 님 강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UC 리버사이드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셰릴 빈트가 와서 발제와 토론을 듣고, 질문도 주고받았어요. 미국의 SF는 백인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A. 하인라인을 읽지 않기가 어렵죠. 분명 여성혐오적 경향이 굉장히 강한 장르였고요. SF에 진입하려면 이를 극복해 나가면서 읽고 쓰고 연구해야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SF에 입문할 때 꼭 『파운데이션』을 읽지 않아도 되잖아요. 과거 SF를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현대적인 SF를 자연히 접하는 일이 가능해요. 한국에서는 어슐러 K. 르 귄이나 로저 젤라즈니에서 많이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예 한국 작가로 SF 독서를 시작하시는 경우도 점점 더 많이 보이고요. 그러니 기본 인식 차이가 있어요. 그로 인해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SF를 더 진보적이고 덜 여성혐오적인 장르로 느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셰릴 빈트는 그런 상태, 즉 르 귄 같은 작가가 캐논으로 받아들여지는 SF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 자체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에요. 처음부터 극복할 대상이 없는, 애당초 이를 자연스레 피해가는 독자들과 작가들이 있다니, 너무 좋은 곳이라고. 그분들의 반응을 보며 이런 상황이 참 귀한 거구나 싶었어요.”

Q. 에세이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에서 ‘경계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을 봤어요. 예전에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라는 책에 실렸던 글이죠. 제가 본 소연 님의 글을 통틀어 가장 뚜렷하게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났어요. 처음 쓴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그 글은 약 13년 전에 쓴 글이에요. 제가 한국어 교사를 할 때니까요. 지금도 기본 방향은 크게 차이가 없어요.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부여하는 작업이잖아요. 어떤 말을 할지보다 어떤 목소리를 선택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발화의 내용보다 발화자가 중요한 면이요. 그런데 역시 소설로 사회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니까 자연스러운 인물을 쓰고 싶거든요. 나에게서, 독자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경계 바깥의 인물이 되어버리면 몰입하기가 어려워요. 저도 쓰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목소리를 갖기 어려웠을 등장인물을 넣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의 SF》 2호에 실린 「수진」이라는 단편이 있어요. 매우 짧은 글인데, 그냥 읽으면 클론 업체에서 만든 나의 클론이 한집에 산다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과 사실상 단절된 상태의, 20대 후반에서 30대인 여성이 도시에서 어쨌든 자기 삶을 꾸리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정상성에서 튕겨 나간 사람이 어쨌든 일상을 살아가는 거요. 경계 근처에서 잘 안 보이는 사람을 발화자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도 위의 지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탄 배가 코로나 때문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돌면서 계속 메일을 보내는 이야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연락하고 걱정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성 커플과 동성 커플은 대응 가능한 방법이 달라요. 제도부터 다르니까 상당히 달라진단 말이에요. 지희에게 편지를 쓰는 ‘나’는 법적으로 지희와 연결될 수 없는 처지라, 지희의 엄마에게 연락해서 겨우 필요한 서류를 받아요. 똑같은 팬데믹 상황이라도 분명히 동성 커플에게 더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간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Q. SF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세계와 낯선 물체를 생각하죠. 소연 님의 SF는 일상적 상황이 많이 나오잖아요. 등장인물이 적고 관계의 범위도 좁아요. 본인과 가족, 친구, 연인 정도죠. 작은 세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마치 미시사로 세계를 읽는 듯해요. 이렇게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를 말하기 위해서 작가가 꼭 세계 규모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 명 한 명의 삶에 세계, 제도, 구조, 사회적 가치관 등이 다 반영되어 있잖아요. 작은 단위에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작가로서 제가 잘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크기가 있으니까요. 개인 단위에서 일어나는 변화, 경험, 생각, 갈등이 다루기 편해요. 제가 커다란 세계관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작가는 아니에요. 큰 이야기를 하면 교조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신경 쓰는 점도 있어요. 이야기의 크기를 무리해서 키우기보다, 내가 잘 쓰는 규모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Q. 작은 세계, 그리고 일상적인 모습에 SF를 더할 때 나타나는 효과가 있잖아요. 거대한 구조를 그릴 때와는 또 다르겠죠. 효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로서 자신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미시적으로 개인의 일을 다루면 보통 작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하죠. 하지만 사람 하나하나는 하나의 세계잖아요. 한 사람의 행동에는 세계가 반영되어 있어요. 얼마나 우주적인 존재인가요. 내가 조금 움직여도 내 그림자는 여럿이 많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저도 편의상 세계는 크고 개인은 작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소설 안의 개인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소설에 나오는 개인은 실존하지 않는, 매우 과장된 개인이에요. 소설에서 드러내고 싶은 어떤 부분만 엄청나게 큰 상태죠. 사람 하나하나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외부 영향과 개인의 결심이 들어있는지 보이면 좋겠어요. 개인의 무게가 독자에게 와닿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SF에서 특히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고요. SF는 세계에 대한 사고실험을 많이 하잖아요. 큰 단위로 사고실험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사람 하나로 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SF를 통해 세계를 현실과 다르게 움직이면 그 안의 사람들도 전부 기울어져요. 그 부분을 포착하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만약 현실에서 개인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사소설이나 르포가 되겠죠. 하지만 세계가 변화하고, 그곳의 개인은 어떻게 같이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건 SF 같아요.”

Q. 여성, 퀴어, 청소년 인물에게 일관성이 있어요. 소연 님 소설은 이들을 여상하게 다루는 점이 좋아요.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레즈비언 커플이 아주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점도 그렇고요.

“어느 정도는 일부러 하는 거예요. 퀴어 문학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교육적인 측면이 있죠. 소설 속 세계에 퀴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곤 하잖아요. 저는 이유 없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었어요. 퀴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모습으로요. 어떤 인물이 퀴어라는 소수자적 특성이 있지만, 여러 특성 중 하나일 뿐인 모습으로. 특별한 소재처럼 다루지 않고 평이하게 쓰고 싶어요. 앞에서 소설을 사회 활동으로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는 사회적인 인식이 들어가요. 성소수자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는 소설이 더 필요하다고요. 독자분들은 비율상 이성애자가 많을 테죠. 성소수자를 당연하게 존재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싶어요.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을 그나마 직접 다룬 소설이 「마산앞바다」와 「처음이 아니기를」이죠. 둘 다 옛날에 쓴 글이에요. 최근의 글은 주인공이 갈등을 겪더라도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겪는 갈등은 아니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만약 리얼리즘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특성이 탈락된 상태를 쓰면 이상할 거예요. SF니까 시공간을 아예 바꿔버리면, 저의 카두케우스 시리즈처럼 다른 사회가 되면 소설을 읽는 사람도 ‘여기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잖아요. SF를 쓰는 사람으로서 특히 적극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신경 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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