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다]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에스토니아의 개방성과 혁신성이 스카이프를 만들었다”
[대사에게 듣다]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에스토니아의 개방성과 혁신성이 스카이프를 만들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2.02.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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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사진=최현식 PD]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사진=최현식 PD]

에스토니아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작은 나라다. 북쪽으로는 핀란드,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었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차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에스토니아는 그들 고유의 언어인 에스토니아어와 그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중세 유럽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으며, 그 외 여러 지역들에서는 삼림이 잘 보존돼 있어 북유럽 특유의 근사한 자연 경관도 볼 수 있다.

2018년 일본의 아베 전 총리는 이런 에스토니아를 유럽 6개국 순방에서 가장 먼저 찾았다. 에스토니아의 문화 보존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것도,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고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에스토니아를 취재했던 <매일경제> 박용범 기자는 책 『블록체인, 에스토니아처럼』에서 “아베 총리가 연초부터 이곳을 찾아간 것은 미래 지렛대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며 “일본 기업들의 진출 관련 지원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왜 북유럽의 작은 신생 국가에게 지원을 부탁했던 걸까. 사실 이 나라는 IT 강국이라는 반전 매력을 갖고 있다. 일찍부터 IT 기술에 집중하며 세계 최초로 일궈낸 성과들이 많은데, 디지털 신분증(2002년), 온라인 선거(2005년), 전자 영주권(2014년) 도입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특히 전자 영주권을 가진 사람은 계좌 개설이나 세금 납부, 각종 계약뿐만 아니라 국적이나 장소에 관계 없이 에스토니아 내에서 기업을 설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 기자는 “블록체인 시대에 에스토니아 전자 영주권이 본인이 속한 국가 시민권보다 더 중요한 신분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블록체인 시대 디지털 ‘로마 시민권’이 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어떻게 북유럽의 작은 국가 에스토니아는 이렇게 혁신적인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에스토니아의 다른 매력은 무엇일까. 주한 EU 대표부 사무실에서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를 만나 에스토니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지난해 8월 대사로 부임했다. 요즘 대사로서 어떤 활동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나.

“대사관 공간을 개설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서울 스퀘어 1층에 에스토니아 비즈니스 허브가 있는데 이곳에 에스토니아와 관련된 샵을 마련하려 한다. <독서신문> 독자들도 에스토니아의 책이나 사업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방문해주길 바란다. 샵은 대사관이 완공되는 올해 9월에 맞춰서 같이 개관될 예정이다.”

Q. 최근 과기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만나 면담했는데. 어떤 논의를 한 건지 궁금하다.

“두 장관님을 예방했던 것은 양국 협력과 관련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양국 학생들의 교육 수준은 굉장히 높다.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초등 기초 교육뿐만이 아니라 대학교, 심지어 과학자들까지도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대한민국에는 약 20명의 에스토니아인들이 있고, 반대로 에스토니아에도 20여 명의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양국의 교육과 연구 협력이 잘 이루어져서 한국과 에스토니아가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지만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IT 강국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에스토니아가 IT 방향으로 발전한 배경은 무엇인가.

“에스토니아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자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천연 자원이 부족했고, 산업 시설도 소련의 몰락과 함께 다 같이 붕괴됐다. 당시 에스토니아의 결정권자들은 어떻게 하면 국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인터넷에 투자를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인터넷 전산망이나 케이블을 설치한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인터넷을 교육할 수 있는 인적 자원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전체 GDP의 1%를 별도로 IT예산으로 산정해 국가 예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국가 재정은 여의치 않았지만, IT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했다.

그 결과 2천년 대에 디지털 신분증 발급이나 온라인 투표가 가능해졌다. 또 에스토니아에는 가족별로 주치의가 한 명씩 있는데, 의사가 처방전을 온라인으로 등록하면,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이 처방전을 직접 약국에 들고 가지 않아도 약국에서 바로 조회할 수 있게 됐다. 요즘은 부동산 업무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이는 에스토니아인들에게도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해서 현재는 99%에 달하는 정부의 행정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단, 두 가지가 온라인으로는 불가한데, 그것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행정처리다.”

Q. 결혼과 이혼은 왜 별도의 사항인가.

“결혼과 이혼이 온라인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마 양쪽 쌍방의 동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이는 국민들의 충분한 합의가 이뤄진 다음에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Q.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행정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전자 정부로 개혁을 하고자 했을 때 국민들의 신뢰도 필요했겠다.

“개혁을 하는 데 있어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했다. 지금이야 사이버 보안이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 많이 느는 추세지만, 당시 정책들이 시행됐던 20년 전에는 지금처럼 많은 우려가 없었다. 전자 시스템을 도입할 때 사람들이 정부와 그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정치권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장단점 등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해서 개혁을 할 수 있었다.”

Q. 한국은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면서 개인정보가 도용되거나 침해받는 사례가 일어나는데, 에스토니아는 이런 쪽에 대한 걱정은 없나. 있다면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정보 유출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우려는 항상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에서는 사이버 안보 분야에 대한 많은 투자를 했다. 2007년 사이버 공격을 받은 적 있는데, 그때 당시에 안보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었기 때문에 방어를 잘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에스토니아는 사이버 안보 분야의 선도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사이버 안보센터 역시 수도 탈린에 위치해있다.”

Q. 지금까지 IT분야에 대해서만 질문한 것 같다. 그 외에 에스토니아가 갖고 있는 매력에 대해서 설명해주면 좋겠다.

“수도 탈린에는 중세풍 건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네이버나 구글 등의 사이트를 통해 한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탈린도 분명 멋있지만, 탈린 밖에 있는 곳도 한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에스토니아에는 1,500개 이상의 많은 섬과 멋진 호수가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라고 불리는 페이푸스 호도 에스토니아에 있다. 그리고 무스나 불곰, 늑대 등의 큰 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에스토니아의 여러 매력 중 하나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전경

Q. 에스토니아인들의 문화적인 특징도 궁금하다.

“에스토니아인들은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다. 수십년 동안 에스토니아의 젊은 층이 국정 운영을 담당했던 것은 이러한 문화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또한 기업가 정신도 투철하다. 에스토니아는 실질적으로 유럽연합에서 1인당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이 가장 많은 기업이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에 스타트업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에스토니아 창업의 성공적인 예가 영상통화 소프트웨어를 만든 ‘스카이프(Skype)’다.”

Q. 젊은 정치인들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게 신기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정치를 하거나, 조금씩 청년 정치인들이 나오기 시작한 수준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나.

“90년대 초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국정 운영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게 되면서 공산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이 정치인들이 예의 있게 내려왔고, 에스토니아는 젊은 정치인들이 능력을 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재밌는 점은 이 당시 총리였던 마르트 라르는 30대 초반이었고, 국방 장관은 24살이었다는 것이다.”

Q. 에스토니아와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점에서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대사가 보는 양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IT 강국이라는 점 말고도 에스토니아와 한국이 공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에스토니아도 한국처럼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한 시간이면 어디든 바다로 나갈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러 풍경을 보면서 본국이 많이 생각난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눈부신 문화 콘텐츠 발전의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우리 에스토니아인들로서도 충분히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에스토니아의 문화 콘텐츠들도 전 세계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Q. 양국의 식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국 음식을 자주 먹는 편인가. 그렇다면 가장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은.

“나는 한국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점심에 이 근처에서 한식당을 찾곤 한다. 내가 한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국 종류, 비빔밥, 김밥 등이다. 그리고 매운 것이든 안 매운 것이든 가리지 않고 전부 좋아한다. 최근에는 전라도를 방문해 ‘삭힌 홍어’도 먹어봤다. 에스토니아에도 비슷한 맛의 음식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부임한 이래 한국 음식 중에 못 먹는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Q. 에스토니아 음식 중에서 한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소개하고 싶은 음식은 ‘절인 청어’다. 소금으로 절인 청어인데 에스토니아인들은 이것을 양파와 찐 감자, 그리고 사워크림이랑 같이 먹는다. 산미가 느껴지는 도우로 구운 호밀빵도 한번 먹어보길 권한다.”

Q. 한 사회의 관심과 고민은 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 에스토니아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

“에스토니아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고전과 아동서적 그리고 자기계발 서적들이 골고루 있다. 지난해 상위 20위의 책을 보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과 노르웨이 작가인 요 네스뵈의 범죄 소설들이 눈에 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이 범죄 소설에 관심이 많고, 많은 독자들이 범죄 소설을 읽는다.”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Q. 에스토니아 문학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에스토니아의 좋은 작품들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지난해 9월 한국 최초로 소개된 에스토니아의 문학 작품 『말썽꾸러기 토츠와 그의 친구들』(원제는 ‘봄’)이다. 이 작품을 쓴 소설가 오스카르 루츠는 당대의 사회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각색했다. 동화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피레드 라우드의 『뿌리 깊은 나무들의 정원』도 권한다. 추가적으로 소피 옥사넨의 『추방』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소피 옥사넨은 핀란드 작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핀란드인과 에스토니아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작가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에스토니아의 역사와 소련의 억압이 잘 묘사돼 있다. 이 책을 읽어본다면 에스토니아인들에게 깃들어 있는 정신을 잘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3월 14일에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대사관들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발트의 책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전시는 약 한 달간 진행될 예정이며, 독자들께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 방문해서 구경해 주길 바란다.”

Q.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지만, 한국 도서를 읽어본 적 있나? 있다면 짧은 감상평을 부탁한다.

“오경자 작가의 수필집을 한번 읽은 적 있다. 한국 전쟁 당시에 작가의 유년기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에세이 형식으로 아주 잘 묘사돼 있었다.

Q. 대사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었나.

“나이에 따라 선호하는 책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한 가지를 골라보자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의 체코 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데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들이 깊게 배어나 있다. 나는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가 포함돼 있는 책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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