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진심으로 쓰려고 하죠." SF 작가 김보영의 창작 이야기
"늘 진심으로 쓰려고 하죠." SF 작가 김보영의 창작 이야기
  • 심완선 SF 전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4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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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SF를 좋아해 :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독서신문에서 『우리는 SF를 좋아해』(민음사)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초엽, 정세랑, 김보영, 듀나, 배명훈, 정소연 등 국내 유명 SF 작가 6인이 인터뷰이로 참여했습니다. 책 내용 중 하이라이트 부분을 공개합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김보영 작가

SF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리는 장르라고 합니다. SF 전문 칼럼니스트 심완선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여섯 명의 SF 작가를 직접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힘을 묻고 듣습니다. 글쓰기, 새로운 세계의 창조, 마감과 함께하는 작가의 일상, 그리고 무수한 가능성들의 우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는 올해 봄 단행본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Q.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서 작용하는 동력이 있나요?

“동력이 필요할까요? 글쓰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없는데. 저는 오히려 글에 너무 빠져 있지 않으려고 애쓸 때가 많아요. 글은 문자가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 사실 독서를 해도 영화를 봐도 글쓰기보다 재미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글에만 빠져 있으면 아는 게 없어지고 쓸 것이 없어져요. 일상을 살고 다른 것을 많이 보아야죠. 반대 방향의 노력이죠.”

Q.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글은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이고 진심이어야 한다고. 사실 내가 쓴 이야기라도 그 내용이 내 가치관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소설 속 인물과 나는 별개지요. 소설은 결국 가짜니까요. 그렇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이야기가 내게 진짜여야 하는 거죠. 쓰는 동안에는 인물이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하는 거예요. 물론 다 거짓말이죠. 하지만 쓸 때 내가 진짜라고 믿고 쓰지 않으면 읽는 사람 누구에게도 진짜가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소설을 쓰며 느끼는 그대로를 독자가 느낄 거라고 믿고 써요. 만약 내가 이 글로 치유를 받았으면 치유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내가 쓰기 싫어하면서 쓰면 독자도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늘 진심으로 쓰려고 하죠. 이 문장이 지금 나에게 진짜인가, 그걸 매 순간 검토하죠.”

Q. 보영님이 SF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세계의 규칙을 창조한다는 점이 좋다고 할까요? 저는 판타지 작가가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20대에 글을 못 쓰고 헤매지만 않았어도 PC 통신 시절에 모험 판타지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저는 어째서인지 많은 이야기가 비슷해 보였어요. 이미 존재하는 설정을 차용하는 느낌이었죠. 당연히 그게 장르 규칙이지만, 저는 내 세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조하는 판타지는 많은 경우 SF로 해석돼요. 저는 데뷔하고 판타지를 여러 편 썼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도 다 SF로 분류되니까요.

그리고 SF는 판타지 이상의 환상을 주죠. 새뮤얼 딜레이니가 말했잖아요. ‘판타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다루는 장르고, SF는 일어나지 않은 일, 하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다루는 장르’라고. ‘일어날 수 있다는’ 그 지점이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당연히 둘 중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호에서 이렇게 된 거죠.”

Q. 지금의 한국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나요?

“「0과 1사이」는 2009년에 발표한 글인데 여전히 그때와 비슷한 호응이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이유로 행해지는 강압, 과다 경쟁 교육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니까요. 1990년대에는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교육의 변화를 위한 투쟁도 많았고요, 그런데 IMF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기조가 더 세어지면서 사람들이 경쟁을 내면화하게 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지요. 「진화신화」는 배경이 고대 한국이라서 다른 의미로 생명력이 있는 듯해요.

「사바삼사라」는 서울 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소설 기저에 있어요. 간혹 연남동에 놀러 가면서 그곳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이곳을 배경으로 그리면 소설이 완결되었을 때쯤에는 내가 소설에 담은 풍경이 하나도 안 남아 있겠구나 생각했죠. 사라져서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글자로 남기고 싶었어요. 실제로는 연재 중에 이미 그렇게 되었어요.”

Q. 한국에서 SF를 쓰면서 어렵다고 생각한 점이 있나요?

“지면이 없었던 점? SF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적어도 ‘우리는 장르소설을 다룬다’는 암시를 주는 곳에 글을 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곳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는 정말 없었고, 우연히 공모전이 생겨서 데뷔는 했지만, 그 후로도 지면은 거의 없었지요. 아주 조금씩 생겨났지만 다시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는 도로 없어졌고요. 저만 그랬나 싶었는데 많이들 그때 지면이 없었다고 회상하더군요. 원고료도 적었어요. 웹진 크로스로드 정도가 일반적인 원고료를 주었지요.

하지만 제 소설은 한국이라는 문화 안에서 나오는 것이니, 제가 다른 곳에 살았다면 다른 소설을 썼겠지요. 게다가 한국 정도면 전 세계를 봤을 때 그리 나쁜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느 나라에서는 아예 글을 쓸 생각도 못 하는 사람도 많겠죠. 그러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출간을 못 하리라는 확신을 하면서도 계속 쓴 건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Q.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아녜요. 포기한 시간이 더 길어요. 그래서 직장도 다녔고.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컸어요. 다음 달에 굶어 죽어도 이달에는 써야 했죠. 안 쓰면 다음 달이 아니라 이달에 죽을 것 같으니까. 이달에 죽는 것보다는 다음 달에 죽는 게 낫죠.

인터뷰에서 무위(無爲)로 쓴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쓴다고. 왜냐하면 내가 쓰는 소설은 출간도 못하고,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확신이 분명했는데, 그런데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썼으니까요. 거꾸로 여기에 낭비한 시간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질 것이 분명하더라도 써야겠다, 그게 그때 내린 결론이었어요. 내가 소설로 무엇을 얻으려 했다면 한 줄도 쓰지 못했겠지요.

그렇다고 고료를 안 받겠다는 건 아니고(웃음), 가족을 먹여야 하니 열심히 벌어야지요. 그래도 무위는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행함에서 더 큰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라, 모순적이지만 그 글귀를 좋아해요.”

Q. 지구는 SF다운 주제이기도 하죠. 옛날 영미 SF를 보면 인류나 지구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잖아요. 매우 제국주의적인 태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류나 지구로 시야를 넓히는 것도 SF가 해내는 중요한 효과이기도 합니다. SF를 쓰면서 그렇게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이나 환경 파괴의 영향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지요.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옛날에는 원인을 몰랐죠. 이제는 우리가 다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요. 다른 나라에서 일으킨 온실효과로 어느 나라는 바다에 잠겨 없어질 수 있어요. 애초에 이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SF를 쓰지 않을까요. 과학은 아무래도 세계가 돌아가는 규칙을 설명하려 하니까요. 내 일상이 세계의 어떤 규칙으로 생겨났는지 생각하다 보면 시야가 지구로, 우주로, 세계 전체로 가기도 하지요.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지구가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망가졌다는 징조 중 하나인데, 저는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분도 많고 여전히 고통받는 분도 많은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종말은 그리 쉽지 않다는 방향의 희망일까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지만 대응하는 방법도 전대미문이었다고 봐요. 사람들이 바로 생활방식을 바꾸고, 바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 세계가 돕고 정보를 나누었지요. 한 곳에서 만든 시스템이나 백신이 전 세계에 전파됐고요. 아마 앞으로도 지구에는 재난이 계속 일어나겠지요.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공해도 계속 심해질 거고, 그러다 또 지금처럼, 한순간에 전 세계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재난이 일어날지 모르지요. 그런데 아마 그때도 어찌어찌 대응은 하지 않을까. 전 인류가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보며 했어요. 우리가 나중에는 방호복을 입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필요하다면 방호복을 입고 살도록 세계를 재편할 수 있겠지요. 인류가 그 정도의 단계에는 이르렀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방호복을 입고 살게 되어도 어떻게든 적응할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시대에 태어난 기성세대가 적응하기 힘들지,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처음부터 세계가 이렇게 돌아간다고 믿고 그에 맞추어 살고, 또 살 방법을 찾아낼 것 같아요. 나 방호복 샀어, 하고 트위터에 쓰고, 리트윗과 좋아요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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