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함께라면
님과 함께라면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2.02.0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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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지난 시절 서울역에서 자주 보아온 지게꾼이다. 남루한 옷차림에 무거운 짐 보따리를 지게위에 얹은 짐꾼들 모습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날 자주 서울역엘 갔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합실엔 보따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젊은 여인네를 비롯, 단발머리 앳된 소녀 모습도 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은 지게꾼들이었다. 그들은 행색이 추레했다. 자신의 키보다 몇 배 높이로 지게 위에 무거운 짐을 얹어놓고도 걸음걸이 한번 흐트러짐 없이 뚜벅뚜벅 서울역 앞에서 멀어지는 지게꾼들이었다. 그 모습이 흡사 어린 날 보아온 서커스단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며 묘기를 부리던 어느 남자의 위태로운 모습을 연상 시켰다. 이런 생각에 잠기며 이들의 뒷모습을 연민의 눈으로 한동안 바라봤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새롭다.

당시 서울역은 서울시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다. 서울은 문명의 불빛을 엿볼 수 있어서 시골 사람들에겐 선망의 도시였다. 그 시절엔 서울 역 대합실은 시골서 보따리 싸안고 무작정 상경한 촌티 흐르는 처녀 총각들의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등골 휘도록 열심히 땅을 파도 힘든 농사일로는 큰돈을 만질 수 없었던 게 그 당시 농촌의 열악한 실정이었다.

이에 서울은 별천지고 지상낙원일 것이라는 환상이 그들의 무작정 상경을 부추겼다. 한편 ‘사람을 낳으면 도시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에 의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말을 키우기에는 제주도가 좋고 사람이 입신양명 하려면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고 여건이 좋은 서울로 가야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농촌의 피폐한 삶에 지친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계획 없이 서울 상경을 꿈꾸곤 했었다. 오로지 서울만 오면 시골의 구질구질한 땟물도 멀끔히 벗고 노력만 하면 꿈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이 이들을 서울로 등을 떠밀곤 했다. 이 사회적 현상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굴뚝 산업이 활기를 띠는 산업사회로 진입 하면서 더욱 절정을 이뤘다. 그땐 공장일이 힘든 농사일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게 농촌 젊은이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어서인가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사회 주역으로 자리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열차에서 내리면서 그동안 등졌던 고향을 다시 하나둘 찾기에 이르렀다. 귀농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신문 기사엔 서울에서 잘나가던 기업에 근무하던 젊은 여성이 문명의 빛을 등지고 시골로 귀농했다는 기사도 있을 정도다. 이때 남진의 ‘님과 함께’라는 노래가 그들 입가에서 다시 맴돌았다면 지나칠까.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 하네

이 노래 가사 대로 삶을 영위한다면 휘황한 불빛이 난무하는 숨통 막히는 도회지 삶이 결코 부럽지 않다. 더구나 지난 세월 보릿고개, 유신체제, 민주화 항쟁을 거쳐 격동의 세대를 살아 온 베이비붐 세대들 아닌가. 이들에겐 시골의 목가적인 생활은 노후에 그리는 최상의 삶으로써 새로운 삶의 돌파구로 다가오기에 이르렀다. 이제 하이테크 사회, 제4차 산업 문명 발달 메타 버스 등의 진보된 과학문명의 혜택도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하여 문명 이기의 편리성에 빼앗긴 인간 본연의 참 모습을 되찾고자 어떤 이는 핸드폰도 일부러 구입 안하고 산단다. 날만 새면 걸려오는 숱한 전화에 발목을 잡혀 사는 듯하다는 게 그 이유이다. 거실에 텔레비전 대신 아날로그 음악에 심취하기 위해 레코드 턴테이블을 들여놓는 이도 늘고 있다. 이 턴테이블은 필자도 지니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집착했던 문명 세계에 가급적 거리를 두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탈(脫)문명, 탈(脫)도시의 바람에 나또한 동참하고자 한다.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도심지의 갑갑한 환경에 비해 대자연의 품은 얼마나 넉넉한가. 문 만 열면 자연이 전부 삶의 공간이 아니던가. 노후에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다. 목숨처럼 사랑하는 님과 함께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리된다면 신선의 삶이 부럽지 않을 듯해 목하 농촌 생활을 계획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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