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숙 시인 “구술기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김신숙 시인 “구술기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 고지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2.02.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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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숙 시인
김신숙 시인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김신숙 시인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인을 꿈꿨다. 오랫동안 글쓰기와 독서 논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책 운동의 일환으로 ‘작은 도서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경력 단절 여성 중 경계성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과 함께 ‘인문놀이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는 소외되고 느린 아이들이 인문학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해나갈지 연구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김 시인은 제주 여성의 드러나지 않은 삶을 기록한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와 자연 속에서 다양한 일을 해 온 옛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하는 할망들’ 시리즈의 첫 책 『열두 살 해녀』를 펴냈다. 감상이 아닌 운동으로서의 독서. 책을 통해 더 나은 사회 만들기를 꿈꾸는 김 시인. 그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Q. 책 『열두 살 해녀』를 쓰게 된 계기는.

“열두 살에 진짜 해녀가 된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에 부동산 경리 일을 했던 적이 있다. 8시간 동안 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외롭고 쓸쓸했다. 그때 문득 해녀이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침 일찍 나가 8시간 동안 물질을 하시는데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반복하는 것을 사무공간으로 비유하면 절대적인 고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마디 없이 물질을 계속하는 해녀들이 어쩌면 일상의 수행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깨달음을 계기로 대도시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의 감수성과 해녀들의 고립감이 같다는 시야를 갖게 됐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낮잠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 한 여자로서 살아온 삶과 인생 속에 숨겨진 수많은 슬픔이 얼마나 사회와 연결돼 있는지를 기록하고 드러내야겠다고 다짐했다.”

Q. ‘만약 전복에서 진주를 본다면 본 사람은 숭시(‘흉하고 언짢은 일’의 제주어)’, 물질 경쟁이 금기시된 이유는.

“어머니께 딸들이 물질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가에 대한 해녀 간의 경쟁이 없었는지 여쭤본 적 있다. 어머니는 물질이 경쟁이 되는 순간 어린 해녀들에게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하셨다. 어른 해녀들은 자기 숨을 조절할 수 있지만 어린 해녀들은 숨 조절이 어려운 이유에서다. 해녀들이 소라를 많이 잡는 것이 아닌,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멈추는 것을 소원으로 빌었던 것도 어머니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Q. 해녀는 엄마로서 딸이 다른 길을 걷길 바랐으나 딸은 엄마를 따라 바다로 향했다.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을 바다로 몰아냈지만 어쩌면 모녀간의 사랑이 해녀 문화가 이어져 오도록 한 것 같다.

“우도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는 마땅한 다른 일거리가 없어 자연스레 해녀가 되기도 하지만 어머니께서도 해녀이신 외할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리고자 해녀가 됐다고 하셨다. 또, 외할머니께서 물질을 못 하셨을 때 바닷가에 앉아 어린아이였던 어머니께 바닷속의 지리를 가르쳐주시곤 하셨다. 비록 나는 해녀가 되지 않았지만, 해녀의 자식으로서 그들의 ‘할망바당’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

Q.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보고 싶은 마음이 벨롱벨롱’처럼 특색있는 제주어가 시를 더 돋보이게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몇 제주어를 표준어로 수정하면서 아쉬움은 없었는가.

“어머니의 말을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제주어만 가지고 표현하면 확장성이 없을 것 같았다. 학교 현장에서 제주어 교육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제주어는 단어, 문장 정도가 전부였고, 서사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 불가능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뒤에 세 편 정도는 완전한 제주어 시를 수록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면 제주어 교육이 더 수월하고 재밌을 것으로 생각해 도깨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넣었다. 전체문장이더라도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를 바란다.”

Q. 구술시는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특색을 강화하는 힘을 지닌 것 같다.

“구술시집은 화자가 직접 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 거칠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면에서 구술로 기록된 것을 읽고 느낀 감동은 창작된 문학작품에서 오는 감동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속 지혜의 깊이나 농도가 짙기도 하고,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Q. 시집 출간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시집을 시작하는 ‘들물시’와 마치는 ‘날물시’가 있는데, 날물시에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수록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주셨다는 등 굉장히 유치하게 썼고, 그 시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어머니와 천천히 시집을 훑어봤었는데 외할머니께 보내는 시에 가장 귀를 기울이셨고, 눈이 반짝거리셨던 것 같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의 기록을 찾고, 그 사람에게 보내는 신호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득하게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Q. 책 뒷면 표지 글에 실제 열두 살 친구들이 적은 글이 실렸다.

“보통 추천사는 유명한 작가들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나는 문단에 존재하는 권위 의식을 없애고 싶었고, 등단제도에 대한 반발심이 들어 주변 도서관에 가장 많이 오는 열두 살 어린이들에게 부탁했다. 동시집을 내면서 주변 문인들에게 왜 지역 출판사에서 그것도 동시집을 내는지에 대한 많은 말들을 들었었다. 더 큰 출판사에서 상을 받아야 한다거나 경력 있는 작가들이 좋은 곳으로 등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최대 천 명의 독자들을 향해 쓰는 글이 왜 의미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문예창작학과 출신도 아니고, 지역인들과 합평하며 시를 배운 입장이다. 어떻게 시인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등단제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려주지만, 시집을 내고 싶을 때 내면 시인이라고 대답한다.”

Q. 지역 문단 문화가 개선되려면.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장르들이 오래전부터 도제 방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수직적인 곳에서 성장해 온 문화예술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인 것 같다. 지역 문학의 경우, 다양한 문학적인 활동들이 일어나야 수평에 가까운 연대를 만들 수 있고, 그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역 출판물들을 알리고 지역 인문학을 단단하게 만드는 콘텐츠들이 많이 기획됐으면 좋겠다. 또, 우리 이후의 세대들이 수평적 관계들을 형성해내고 연대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Q. 최근 독서와 글쓰기 습관 형성을 위한 강연을 했다. 문학과 멀어져가는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20년 정도를 독서 논술 시장에서 글쓰기 학원을 운영해 스마트폰 시대에 얼마나 책 읽기가 힘든 것인지를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문학적인 것들이 소중하다고 인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영상물 유통 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영상 시대가 도래했다. 자극적인 영상물로 우리는 설득당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고통을 어디에서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방법을 찾기 위해 눈으로 읽으며 상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아이들과 신춘문예 등단한 단편 도서들의 글만 출력해 소리 내어 읽고 표지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얀 바탕에 텍스트 읽기’를 하면서 함께 한다는 즐거움에 초점을 두고 있다.”

Q.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일하는 할망들’ 시리즈와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4·3 사건 당시 할머니 등에 업혀있다 떨어져 척추 장애를 앓고 살아오셨다는 어르신을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다. 현재 작업하는 과정에 있어 내년 4월쯤에 동시집을 낼 예정이다. 여성들의 인생 자체에 굉장히 슬프고, 억울하고, 폭력적인 일들이 많았다. 그런 일들에 눈물짓고 불행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 또한 많았다. 딸 넷, 아들 하나인 집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언니들의 애착과 다정함 속에서 자라 어떤 것에 호기심을 느껴도 위험하지 않을 만큼 돌봄을 받았다. 그런 성장 과정이 있어 남의 일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기질을 가질 수 있었고, 항상 슬픔을 가진 사람들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활동으로 전환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던 것 같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활동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독서신문 고지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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