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춘천옥 (12회)
소설 춘천옥 (12회)
  • 김용만
  • 승인 2008.04.1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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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개선장군처럼 뻣뻣이 서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직공들에게 장비를 챙겨 차에 싣도록 했다. 이 정도면 선전은 백 퍼센트를 초과달성한 셈이다. 그때였다. 지프 기사가 내게 공손히 물었다. 
  “이거 마카(모두) 닦으모 얼만교?”
  아까 거드름피우던 태도와는 영판 다른 모습이다. 나는 품위 있는 목소리로 나보다 젊은 그 기사에게 말했다.
  “작업량에 따라 대당 800원에서 1500원 정돕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끝내야겠습니다. 공장에 오시면 이보다 더 잘해드리죠. 여긴 컴프레서도 없고, 시설 때문에....”

  나는 시설이란 말에 힘을 주었다. 시설을 제대로 갖춘 공장에 오면 더 기똥차게 서비스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구경꾼들은 우리가 차를 출발시킬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프 보닛에 반사되는 햇살을 지켜보았다. 
  골프장 선전이 효과를 거뒀는지 날이 갈수록 광택 차가 늘어났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큰 정비공장에서 광택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자기네 공장에서 칠한 차를 고정적으로 광내달라는 것이다. 성심껏 서비스를 해주다 보니 일반 손님 차도 밀리기 시작했다. 
  손님 중에는 광택 차의 미미한 흠을 칠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살짝 스친 흠을 고치겠다고 큰 정비공장에 들어가면 절차가 복잡하고 비싼 비용을 치러야 되니 광도 내고 칠도 때우자는 계산이었다.  

▲     © 독서신문
  나는 도장(塗裝)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거래처 정비공장에 갈 때마다 칠하는 모습을 유심히 익혀두었다가 집에 와서 혼자 연습했다. 하지만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장 기술자를 한 사람 채용했다. 그에게서 칠하는 법과 색깔 맞추는 법을 배웠다. 내가 그의 조수가 된 셈이다. 자꾸 반복하다 보니 솜씨가 익어갔다. 칠도 어렵지만 색 맞추기는 섬세한 감각이 필요했다. 검정색도 가지각색이고 흰색도 마찬가지였다. 앰뷸런스의 하얀색은 백색에 녹색을 몇 방울 타야 제 색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색상은 무한대였다. 예를 들어 보라색을 내려면 검정, 흰색, 파랑, 노랑, 빨강 등을 섞어야 되는데 그 안료들의 배합으로 같은 색을 내기란 귀신도 힘들 것이었다. 한마디로 딱 맞는 색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즘은 컴퓨터가 있어 어떤진 모르지만.

  서툴기 짝이 없는 내가 색을 맞추려면 손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나는 검정이나 흰색 차에만 색을 내주고 다른 색은 기술자에게 맡겼는데, 사장인 헌구는 그런 나를 부산 바닥에서 최고의 기술자라고 허풍을 치곤했다. 일종의 광고였다.
  “우리 공장장은 서울 기술잔기라. 귀신도 몬 따르지러.”
  그때마다 내 이마에는 진땀이 맺혔다. 검정과 흰색만을 다루는 데도 당연히 색 맞추는 건 엉망이었다. 헌구는 내 엉터리 솜씨를 보며 이렇게 언구럭을 떨었다.
  “이 사람아, 지발 술 좀 끊으래이. 만날 술독에 빠져 살모 우째 색을 맞추갔나. 응?”
  그러면서 내 기술을 변호해주곤 했다. 나는 술을 잘 마실 줄 모르지만 그처럼 중독자로 몰아 체면을 살려주었다. 또 내 엉터리 기술을 광택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매끄럽게 광을 내다보니 때운 자리가 확연히 표가 난다는 말인데, 사실 검정이나 흰색은 대충 맞춰 뿌려도 광을 내기 전에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내 하빠리(초급) 기술을 서비스로 보상해주었다. 손님 마음에 꼭 들 때까지 차를 구석구석 손봐주었고, 그 바람에 기술이 부족한데도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한 일이 터졌다. 바닷바람이 먼지를 날리던 오후였다. 직원들과 차를 광내고 있는데 까만 지프가 들이닥치더니 점퍼 차림의 사내 둘이 무조건 나를 차에 실었다. 반항할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야 딱 한마디를 뱉았다. 조수석에 앉은 덩치 큰 사내였다.
  “늬가 공장장 맞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도 없고 보수도 받지 못하지만 내 명함에는 공장장으로 적혀 있고, 주변에서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는 차 속의 살벌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조용히 물었다. 그들이 수사관인 걸 직감한 터라 긴장되진 않았지만 잡아가는 이유가 캄캄했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입 닥쳐!” 
  “나도 법을 다뤘던 사람이오.”
  끌려가면 당장 매질부터 당할 텐데 그냥 참을 수만은 없었다.
  “법? 쌔끼! 법을 다뤘다는 쌔끼가 차떼기로 해먹어?”
  “차떼기라뇨? 내가 뭘 해먹었다는 거요?”
  퍼뜩 짚이는 건 있었다. 헌구가 나한테 미룬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차떼기로 빼먹었다면 기름을 훔친 게 뻔했다. 가끔 하던 짓이었다. 손을 뗀 줄 알았더니, 내가 알면 헤어질까봐 몰래 해먹은 모양이었다.   
  “잠자코 있어. 까불면, 알지?”

  덩치 큰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로에 접어들자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경우로 통할 일이 아니었다. 말투나 폼으로 봐서 군 수사관일 성싶은데, 그렇다면 끌려갈 곳이 경찰서가 아니었다. 내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군부대로 끌려가면 속수무책이었다. 경찰관이라면 농담 정도로 여유를 부리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조용히 머리를 굴리는 동안 차는 위병소를 지나고 있었다. 칙칙한 2층 건물 앞에서 차가 멎고, 나는 지하로 끌려갔다. 책상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다짜고짜 덩치 큰 사내가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나는 다급했다. 옛날 담력을 살려냈다.
  “내 몸에 손대면, 암 이유 없이 손대면 일이 커질 거요. 나 사표내고 부산 내려온지 반년밖에 안 됐소. 친구놈이 엉뚱하게 나를 댄 모양인데, 난 암 내용도 모르고 끌려왔소. 우선 말부터 하는 게 순서 아뇨?”
  옆방에서는 연방 아이고 소리가 터져나왔다. 탁탁탁, 몽둥이 타작소리도 들렸다. 기분이 묘했다.       
  “입 다물어!”
  덩치가 몽둥이를 치켜올렸다.
  “팰라면 패쇼. 나 그냥 있지 않을 거요. 선량한 시민한테 몽둥이 댄 것, 군대완 다를 거요.”   

  덩치가 잠시 망설이다가 몽둥이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문다. 나도 긴장이 풀린다. 그 나른한 기분이 목소리를 촉촉하게 적신다.
  “도대체 내 친구가 뭔 짓을 했죠?”
  “말로 하재서 말로 하는 거니 점잖게 부쇼.”
  덩치가 처음 존댓말을 흘렸다.
  “공군 동긴데, 인간은 참한 애요. 휘발유요 모빌요?”
  “모빌 두 트럭인데, 정말 모르는 거요?” 
  “알았음 그런 자와 함께 지낼 내가 아뇨. 양심 하나 챙기며 살다 죽을 나요.”
  “전직이쇼?”
  “경찰관 중엔 철학자가 많아요. 진리를 탐구하는.”
  덩치가 내게 담배를 빼준다. 그때 저쪽 구석 출입구로 들어온 계급장 없는 군복이 소리친다.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그 사람 보내. 그 새끼만 채면 돼.”
  “먄합니다.”

  덩치가 씩 웃는다. 나는 담배를 태우며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밖으로 나오니 잔잔해진 하늘에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영도 쪽을 바라본다. 바닷물에 빠지고 싶어 찾아간 자살바위. 지금도 자식이 데려갈 날을 기다리는 두 노인.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부모 없는 팔자가 그립다. 광야에 몰아치는 태풍 같은 내 팔자가 숫재 이채롭다. 좋다.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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