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의 아내 나탈리야
푸슈킨의 아내 나탈리야
  • 신금자
  • 승인 2008.04.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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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속의 여인들
 
▲ 신금자[수필가·본지 편집위원]     ©독서신문
그녀는 푸슈킨의 눈을 멀게 했다


 모스크바 중심에 위치한 아르바트 거리는 서울의 명동거리처럼 좁고 번화하다. 그 거리가 유명한 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슈킨이 살던 2층집이 바라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수머리에 할 말을 가득 머금은 눈빛의 그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득 베토벤이 생각났다.
 
 푸슈킨의 취향이 궁금하던 차에 베토벤이라니. 말년에 귀가 멀어 그 기괴하고 산만한 정신세계를 보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작곡에 혼을 바치던 베토벤의 신들린 모습과 겹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 그는 귀가 멀었다지만 자기의 일을 숨지기 전까지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고 우리를 위로하던 천재시인 푸슈킨은 결투장으로 내몰렸다. 노여움으로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공연히 딴청이 아니다.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중, 무엇이 어떻다고 알아내서 아는 척 하기가 너무 버겁다.
 
 그냥 아르바트 거리에서 악단이 연주하는 재즈 음악을 들어주고, 아마추어 화가 앞의 빈 의자에 기꺼이 모델이 되어줄 것과 알아듣지 못하는 시낭송일망정 푸슈킨의 시려니 하고 듣기만 했으면 좋겠다.
 
 
이단이 있는 풍경

 나탈리야 곤차로바는 러시아 대문호 푸슈킨의 아내다. 푸슈킨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모스크바의 한 사교장이었다. 당시 16세였던 그녀는 무도회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영원할 것 같은 순진무구한 그녀의 미모는 단숨에 뭇 남성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훗날, 반체제 시인인 푸슈킨을 황제의 시종에 임명한 황제 니콜라이 1세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도 나탈리야를 사모했다는 증거다. 따라서 그녀가 황궁에 드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한 인사로 푸슈킨을 배려한 인사가 아니다. 호사가들이 더러 비웃었을지라도 푸슈킨은 잘 참아냈다.

 이렇듯, 시작은 순했지만 그녀로 인해 푸슈킨의 삶은 혹독한 전환을 가져온다. 이미 그녀 주변엔 남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고 암투도 심했다. 그보다 더 그녀의 남자는 먼저 그녀의 어머니 마음에 들어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욕심이 많았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어서 가정 형편이 어렵기도 했다. 그러니 나탈리야를 데려갈 사람은 재력가가 첫째에 꼽혔다. 그러나 가난한 푸슈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했다. 가장 열의를 가지고 나탈리야에게 매달렸다. 비록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지만 열다섯 살부터 시작(時作)에 천부적 재능을 보이며 서른에 국민시인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런 명성은 성가시럽기만 했다. 푸슈킨이 급진적 사상을 지니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점도 어머니에겐 큰 불만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귀족이나 재산가들도 가세가 기운 집안의 딸과 사돈지간이 되는 것을 꺼리니 말이다.
 

 은유적 유혹과 위험

 먼 옛날 서양에서는 남자가 처가에 줄 지참금이 없으면 여자를 힘으로 훔쳐 끌고 달아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피운 소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꽁꽁 숨어 지내야만 했다. 이를테면 찾지 못하도록 멀리 도망을 가서 얼마 동안 둘이서만 지내던 것이 지금의 신혼여행이 되었다고 한다. 차라리 푸슈킨도 그녀를 보쌈해서 멀리 달아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푸슈킨은 여러 친구와 형제들에게 빚을 지며 사귄지 2년여 만에 가까스로 결혼했다. 황제도 부럽지 않았다.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31살의 푸슈킨이 19의 어린 신부를 맞이하였다. 푸슈킨은 자유분방했던 습관을 딱 그치고 안정을 찾아갔다. 작품도 부지런히 쓰고 네 명의 아이들을 잇달아 낳았다.
 
 행복은 불행과 손을 잡고 다닌다고 햇던가. 신혼의 기분도 잠시, 그녀가 푸슈킨을 긴장시켰다. 나탈리야는 결혼 후에도 많은 남자들의 구애가 따랐고 그녀도 싫은 내색은커녕 은근히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특별히 꼬리를 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기회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전, 푸슈킨의 넋을 잃게 하였던 그 청순한 매력이 이젠 고통이 되었다. 
 
 결혼한 지 3년여, 결국 일이 터졌다. 푸슈킨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네덜란드 외교관인 단테스였다. 단테스는 푸슈킨 처제의 남편이었다. 그는 바람기 많은 여느 남자들처럼 잘 생기고 여자에게 친절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테스의 달콤한 고백을 믿고 이내 그에게 빠져버렸다. 완강히 거절해서 물리칠 줄을 몰랐다. 애초에 이를 딱 자르지 못하고 은근슬쩍 넘기니 염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돌았다. 세간에 다 아는 소문을 푸슈킨만 모르고 있었다. 그런 푸슈킨을 비웃고 쑤군대는 편지들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푸슈킨이 이를 참지 못하고 불쾌한 소문의 진원지인 단테스를 찾아 결투를 고한다.
 
 한데 푸슈킨을 아끼는 사람들이 한사코 말려서 없던 일로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또 투서가 날아들었다. 여전히 아내와 단테스가 비밀리에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끝내 분을 삭이지 못하고 푸슈킨이 결투를 실하기 위해 단테스를 찾아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837년 1월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단테스가 먼저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푸슈킨은 하복부를 맞고 눈 속에 쓰러졌다. 하얀 눈밭에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푸슈킨도 사력을 다해 총을 겨누었다. 총알은 단테스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그로보터 이틀 후 푸슈킨은 세상을 버렸다. 숨을 거두기 전, 울부짖는 아내에게 마지막 위로를 하고 떠났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쁜 것은 아니었소.”
 
 훗날, 이에 대한 의혹들을 밝혀냈다. 푸슈킨의 정적들이 푸슈킨을 제거하기 위해 소문을 조작했다고. 혹자는 황제 니콜라이 1세와의 불륜을 덮기 위해 꾸민 일에 나탈리야가 이용됐다고도 덧붙였다. 하늘에 톱니바퀴 궁굴리는 민들레꽃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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