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소설가 김중혁 “책을 읽고 나서, 무엇보다 새로워지길 바란다”
[명사에게 듣다] 소설가 김중혁 “책을 읽고 나서, 무엇보다 새로워지길 바란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2.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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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 [사진=최현식 PD]

경쾌하다. 천진하다. 소박하다. 소설가 김중혁의 일상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감흥이다. 그의 신간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에는 무료한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과 유희(遊戲)로서의 글쓰기를 추구하는 김중혁만의 ‘창의적인 딴짓’이 담겨 있다.

그는 중고 물품을 구입해서 그 물건의 예전 스토리를 상상해 보자고 말하고,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도시에 가서 하루를 지내보자고 권유하며,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해보자고 제안한다. 책을 찢어서 벽에 붙이는 것도 추천한다.

위 방법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감각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새로운 율격을 부여하는 방법들인 셈이다. “잘 알고 있는 곳을 여행자처럼 걸어 보자”는 일상의 여행자 김중혁.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블러썸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자이언트북스

Q.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신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이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사람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하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냐고.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냐고. 이 질문들이 책을 쓰게 된 첫 번째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나 창의력을 키우는 법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봤는데, 나하고는 잘 안 맞더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내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내 머릿속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면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내 머릿속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뭘 생각하는지, 어떤 행위로 창의력을 키우는지를 하나씩 적다 보니까 여러 개가 나왔고, 그걸 모아서 책으로 펴냈다.”

Q. 소설가는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했는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것 같다.

“사실 소설가는 글 쓰는 게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게 일이다. 글 쓰는 건 생각의 부산물일 뿐이다. 소설가는 어떻게 하면 생각을 잘 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이 생산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바쁘게 사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생각해서 소설이라는 결과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Q. 전반적으로 책의 태도가 “그게 뭐 어때서?” “그냥” “아니면 말고”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삶의 태도와 비슷한가?

“에세이의 경우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종류의 책들이 있지 않나. 근데 이 책의 내용은 이렇게 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는 식이다. 그런 느슨한 태도가 중요했다.”

Q. 일상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방법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쓰기 위한 소설가의 ‘딴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이 안 써질 때 뭘 하는지 되게 많이 물어본다. 대체로 쓸데없는 일들을 한다. 청소를 한다든지… 아, 청소는 쓸모가 있구나. (웃음) 갑자기 책장 위치를 바꾼다든지, 밖에 나가서 식물들을 관찰한다든지 남들이 볼 땐 비생산적인 일들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전환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은 벽에 부딪혔을 때, 그걸 돌파하기 위해서 뭔가를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 이 책에는 그 과정들이 담겨 있다. 내가 알기로 많은 작가가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 (웃음)”

Q. 그 딴짓들은 대개 “관찰하자” “상상해보자” “귀를 기울이자” 등의 문장으로 귀결한다.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니까. 물론 누군가와 함께할 때 즐거운 일들이 있다. 근데 창의적인 순간은 혼자 있을 때 더 많이 온다. 토론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혼자 웅크리고 있을 때 훨씬 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되게 예민해진다. 촉수가 곤두서고 모든 감각이 날카로워지는데, 그 촉수와 감각으로 무언가를 관찰할 때 아이디어가 많이 생긴다.”

Q. 혼자 있는 게 우울하지는 않나.

“우울하다. 되게 우울하다. 근데 대부분의 소설가는 그 우울을 조절할 줄 안다. 예를 들어 100%가 우울의 최고치라고 치면, 80% 정도의 우울을 유지하면서 그 우울을 글 쓰는 에너지로 활용한다. 기본적으로 소설가들은 우울한 사람들이고, 혼자서 그 우울을 컨트롤하면서 생각하고, 쓰는 사람들이다.”

Q. 우울을 통해서 글을 쓰지만, 우울을 해결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책을 가리키며) 이거지. (웃음) 즐거움의 동력을 타인으로부터 찾으려고 하면 힘들다. 그래서 혼자 즐거워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노력을 엄청 많이 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스스로 즐거워지는 방법에 관한 리스트라고 볼 수도 있다.”

Q. 다른 소설가들과 비교해서 방송을 많이 한다. 방송을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건지도 궁금하다.

“이제껏 돈을 벌기 위해서만 했던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방송이 재미가 없으면 안 했을 거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일을 했겠지. 일단 기본적으로 재밌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라는 존재가 노출돼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게 소설가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 소설가들은 막 고기잡이배를 타고 그랬다. (웃음) 방송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즐겁고 공부도 된다.”

Q.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진행했던 ‘영화당’이라는 방송에서 영화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소개하는 ‘1분 브리핑’ 코너를 맡았다. 그걸 보면서 감탄도 했지만, 무척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미쳤지. 그건 내가 생각해도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했던 작업이었다. 매주 하기 때문에 빨리해야 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뽑아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영화 세 편의 공통점이나 세계관을 아우르는 뭔가를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계속 안 떠오르다가 세 편의 영화를 다 보기 직전에 ‘이렇게 그리면 되겠다’ 생각하고 다시 그 영화들을 볼 때 약간의 쾌감 같은 게 있다. 최근 영화감독들과 작업할 일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내게 영화당을 재밌게 봤고,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 1분 브리핑 본다고 얘기하더라. 너무 큰 찬사여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Q. 물리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작가’라는 이미지가 있다.

“문학동네에서 하는 ‘젊은작가상’ 1회 수상자여서 그런 것도 있고. (웃음) 호기심인 것 같다. 내가 게을러졌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게을러졌다는 걸 다르게 표현하면 호기심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럴 때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궁금한 게 없으면 되게 이상한 느낌이다. 마치 내가 잘못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왜 지금 내 마음을 흔드는 게 없지?’라는 생각을 할 때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게 되고, 누군가를 가르치게 된다.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 적어도 누군가에게 꼰대질을 안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도 좀 있다.”

Q. 주목하는 젊은 작가가 있는지.

“내가 안 하는 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소설 추천사를 안 쓴다. 특별히 누구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요’ ‘너무 좋아요’라고 하는 게 부담스럽다. 소설을 열심히 읽고는 있는데, 성향상 특정 작가를 공적으로 언급하거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더라.”

Q. 당신의 소설에는 참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이번 책에서 스스로는 DJ나 발명가가 꿈이었다고 적었는데, 이 외에 어떤 직업을 가져보고 싶은지.

“꿈을 한번 이뤘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꿈이었는데, 그 직업을 『나는 농담이다』라는 소설에 등장시켰다. 의자에 앉아서 손으로 열심히 스탠드업 코미디를 했다. (웃음) 누군가를 웃긴다는 게 참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부럽다.”

Q. 「질문하는 연습을 해 보자」라는 챕터가 인상적이다. 기자에게 질문 하나를 한다면?

“인터뷰를 많이 하시니까 이제껏 내가 했던 질문 중에 스스로 보기에 좋았던 질문이 있다면?”

기자 : <씨네21>에 이다혜 기자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유머러스하게 토로한다는 점에서 문소리 배우님이 연출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와 비슷해 보였다. 영화전문지 기자님이라 출간한 책을 영화와 엮어 질문했는데, 질문이 좋다고 하셔서 기뻤다.

Q. “생활에 미션을 부여하면 새로운 리듬이 생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한데, 현재 당신의 미션은 무엇인가.

“너무 많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요구르트와 약을 먹고… (웃음)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딱 떠오르면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슬프지 않나. 이 책에 있는 여러 가지 미션이 되게 사소해 보이지만,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장편 소설을 쓰고 있어서 내일은 이 부분을 써야지, 이런 자료를 찾아봐야지, 라는 미션을 부여한다.”

Q. 이 책에는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100가지의 방법들이 있다. 그중에 딱 하나를 추천한다면.

“이 책을 내고 강의를 하러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해보고 싶었는데, 책을 무작위로 펼쳐서 나오는 걸 해보는 거다. (인터뷰 중 그렇게 나온 챕터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 도형과 색으로 맛을 표현해 보자」) 이건 진짜 내가 많이 하는 거다. 그리고 요리하는 게 창의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Q. 왜 그런가.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처럼, 주어진 거로만 만들어야 할 때 창의력이 발휘된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니까.”

Q. 맛을 도형과 색으로 표현한다는 게 참 독특하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완성된 요리를 떠올린 다음 거기로 가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생각하는 거다. 그렇게 요리를 하다 보면 실패의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을 어떻게 극복할지,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우게 된다. 소설도 비슷하다. 소설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어렴풋하게 완성품을 떠올려본다. 대개 그 완성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왜 그렇게 완성되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면 재밌다. 음식을 다 만들고 맛을 보면서 ‘내가 애초에 원했던 맛은 동그라미였는데 사각형이 됐어.’ ‘왜 사각형이 됐지?’ ‘귀퉁이를 잘라내면 그 맛이 나오려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보는 거다. 그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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