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타인에게 과한 인정을 베풀거나 지나치게 착한 일을 해서 자신의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양공이라는 군주가 적에게 친절을 베풀다가 패배했다는 기록에서 비롯됐다. 당시 장수들은 적이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양공은 “그것은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패자(覇者)가 될 수 있다”며 한사코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사자성어가 가진 의미처럼 남에게 어설프게 배려를 했다가 도리어 손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한다. 어쩌면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보다 은근슬쩍 반칙을 하거나 편법을 쓰는 게 인생을 더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책 『페어 플레이어』의 저자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원칙을 지키며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이 치열한 경쟁에서 결국 이기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 단지 괴물 같은 사람이 더 주목받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며 페어 플레이의 가치에 주목한다.
저자는 불과 13개월만에 뉴욕에 엠파이어스테이트 102층 빌딩을 지은 건설업자 폴 스타렛의 이야기를 페어 플레이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1928년 당시 많은 건축업자들은 건물을 짓기 위해 투자자와 건설 노동자들을 속이는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장비를 갖고 오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는 중고 장비를 갖고서 작업하는 일도 있었다. 그에 반해 스타렛은 자신의 페어 플레이 신념을 지켜 투자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실 그는 이렇게 큰 건물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에 필요한 장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투자자는 이런 스타렛의 약점에 대해 캐묻곤 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한 태도로 당장은 장비가 없어도 장비를 마련해서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건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장비들을 되팔아 그 돈을 투자자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저자는 이런 스타렛의 진솔한 태도가 오히려 투자자들을 설득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또한 스타렛은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많은 배려를 했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기 일쑤였다. 위험한 일을 함에도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지침은 거의 없었으며 임금 수준도 터무니없이 낮았다. 작업 중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스타렛은 기존 건설업자들이 건설 노동자들을 통제하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기본 임금의 두 배 이상인 일당 15달러를 지급했다. 심지어 날씨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는 때에도 임금을 주는 호의를 보였다. 또한 공사중 바닥이 갑자기 꺼져서 노동자들이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 대책에도 신경썼다.
당시 공사 현장은 이직‧퇴사율이 높았는데, 스타렛의 전략은 곧 노동자들의 이탈률을 낮추는 동시에 신규 노동자에 대한 재훈련 비용을 아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게 신뢰 관계 안에서 점점 숙련된 노동자들은 빠른 시간 내에 이 빌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스타렛의 성공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는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때 더 멋진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약 1년 만에 완공한 힘”이라며 “이런 접근법이 확산되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나아가 사회가 편안해지는 것은 덤”이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