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임상심리학박사 고선규 “자살 사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명사에게 듣다] 임상심리학박사 고선규 “자살 사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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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규 작가 [사진=안경선 PD]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자살로 상실한 경험이 있는 자살 사별자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을 포함해 좋아했던 연예인을 자살로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어느 아이돌 스타의 죽음에 “팬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다”는 반응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임상심리학박사로 자살 사별자 심리지원 단체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는 고선규는 가장 근본적인 자살 예방책으로 ‘살만한 사회’를 꼽았다. 자살 유가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자살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숨소리가 잘 들리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자살률은 떨어진다.

고선규는 2021년 11월 20일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에 맞춰 책 『여섯 밤의 애도』를 펴냈다. 이 책은 가족을 자살로 잃은 자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자조 모임(비슷한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면서 아픔을 치유한다. 고선규는 그 대화의 장에 독자들도 함께하자고 손짓한다.

죽음을 따뜻하고 사려 깊게 보듬는 작가. 단순한 연민을 넘어 통감과 연대의 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책. <독서신문> 양재동 사옥에서 고선규를 만나 『여섯 밤의 애도』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자살 예방 및 자살 유가족 상담이라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계기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2014년에 처음으로 심리부검 관련 사업을 복지부 예산으로 시작했다. 심리부검이라는 것은 자살한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서 자살 예방 정책에 기반이 되는 근거를 찾는 일이다. 우연히 그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살 사별자들을 위한 심리부검면담 및 애도 상담을 시작하게 됐다.”

Q. 최근 책 『여섯 밤의 애도』를 펴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가족을 자살로 잃었을 때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충격의 여파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거나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심리부검면담이나 애도 상담을 하기에는 주저되거나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혼자 고립되어 있는 듯한 마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Q.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자극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 좋았다. 책을 쓰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말씀한대로 뭔가 ‘독자들의 눈물을 쏙 빠지게 해야지’ 이런 걸 경계했다. 그건 말 그대로 고통의 전시니까. 참여하신 분들의 말이 왜곡되거나 그들의 아픔이 고통의 포르노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분들의 경험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담백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이분들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애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사건 직후에 너무 힘들고, 아프고, 고통에 허덕이는 모습이 아니라 자살 사별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치유하고 회복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Q. 각각의 챕터 말미에 자살 사별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주고 있다. ‘이렇게 하면 좋겠다’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된다’ 등 독자 입장에서는 그런 조언들이 좋았다.

“다행이다. (웃음) 근데 책에 적어 놓은 방법들이 모든 자살 사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항상 문장에 여지를 남겼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애도 방법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Q. 자살 사별자라면 누군가와 함께 ‘마음의 장례식’을 꼭 치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는데.

“자살 사별자가 치르는 장례식은 일반 장례식과는 좀 다르다. 죽음의 이유가 불분명한 갑작스러운 죽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셔도 장례 준비할 땐 경황이 없다. 우리가 장례식을 하는 목적은 고인을 추모하고, 함께 슬퍼하고 그러면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가령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부모는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슬퍼할 시간마저 없다. 또 남들에게 자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도 못하기 때문에 함께 슬퍼해줄 사람도 없다. 그렇게 황망하게 있다가 장례식이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의 본연의 의미와 기능이 자살 사별자들에게는 제대로 가닿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위로도 받지 못하고 혼자 고립돼서 그냥 견디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장례식이 꼭 필요하다. 장례식이 끝나고, 전문가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장례식을 다시 하는 거다. 그게 바로 애도 상담이다.”

Q. “애도는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게 회복이다. 누군가의 상실로 인해 생긴 마음의 구멍은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메울 수 없다. 그냥 그 구멍과 함께 살아야 한다. ‘나한테 이런 구멍이 생겼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프구나’ 등 그 감정들을 회피하거나 덮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바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내 아픔과, 내 존재를 똑바로 인지하고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다.”

Q. 아이돌 그룹 샤이니가 긴 공백을 깨고 다시 활동하는 모습이 반가웠다고 적었다.

“종현의 죽음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는 점이 보기 좋았다. 특히 키(김기범)의 경우에는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종현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었지만 잘 극복해서 더욱 멋진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공인의 모습이 자살 사별자들에게는 굉장히 필요한 이미지다. 그들은 그런 이미지를 통해 ‘내가 행복해도 되는구나’ ‘죄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등의 생각을 갖게 된다. 키의 그런 행동은 팬들에게도 되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Q. 학교나 직장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실시하는데, 의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있고,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있다. 자살은 100% 예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마치 불량품 뽑아내듯 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내가 예전에 모 기업에 강의를 갔는데, 인사담당자가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냐’고 묻더라. 자살 시도를 한 직원이 있으면 자살이 일어나지 않게 담당이 붙어서 그 직원을 아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더라. 나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행복할 수 있게, 삶의 끈을 다시 잘 잡을 수 있게 해줘야지.”

Q.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요즘 추세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왜냐하면 자살 유가족이 자살할 확률이 가장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분들은 사회적 편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숨어서 살고 있다. 전 국민 수준의 자살 예방책도 중요하지만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국가가 자살 유가족의 삶을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이건 좀 근본적인 얘긴데, 감기는 예방책이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손 씻기를 잘하면 된다. 근데 자살은 예방이 무척이나 힘든 영역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촘촘하게, 보편적으로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처럼 자살 고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세심하게 돌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이 살만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자살률이 떨어진다.”

Q. 다른 문제는 더 없나.

“예산 문제다. 우리나라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은 미국의 한 주보다 못한 상황이다. 심리부검면담이나 애도 상담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훈련된 전문가가 많이 양성되어야 한다.”

Q. 직업적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듣는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조금만 힘든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자살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가령 뉴스에서 어떤 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여론 재판을 당하고 궁지에 몰리면 ‘어… 죽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직업이 그렇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자살 관련 기사나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기 때문에 그런 게 좀 힘들다.”

Q. 반대로 이 일을 하면서 뿌듯했던 적은 없나.

“뿌듯하다기보다 그냥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다 보니 현재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원래 되게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거 하자, 라는 주의로 바뀌었다. 뒤로 미루거나 그러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열심히 잘 해보자라는 것. 그런 태도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Q. 끝으로 자살 유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점처럼 분산되어 있는 사람들을 느슨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게 이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자살 사별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실감하셨으면 좋겠다. 나 혼자만 아프고, 나 혼자만 감당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 또 있다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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