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페미니스트 엄마와 비혼주의자 딸의 이야기
[책 속 명문장] 페미니스트 엄마와 비혼주의자 딸의 이야기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1.26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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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딸과 엄마 사이는 끊을 수 없는 깊은 애정 관계가 틀림없다는 애달픈 착각에서 깨어나려는 가당한 노력은, 실로 지지부진했다. 더 끊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애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하나둘 지상에서 사라지면서 딸을 친구 삼으려고 아부하고 집착하고 참견하고 외로운 사람인 척,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모자란 사람인 척하고 붙들고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6쪽>

아이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부둥켜안거나 심장을 가까이 두는 포옹은 종종 해도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 올려주는 것처럼 등을 밀어준 적도 손을 내밀어 끌어준 적이 없다. 그러면? 물리적으로 그랬다 하더라도 심정적으로 나는 딸들에게 가혹하게 들이닥쳐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맞바람이었을까, 가만히 등 땀을 식혀줄 정도로만, 밀어 올려줄 정도로만 작용하는 등 바람이었을까.<74쪽>

나는, 우리는 2021년 1월 현재,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인가. 제사가 싫다고 주장하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전통 중시주의자로 변한 무지몽매한 사람이 된 것인가. 다들 없애거나 간소하게 줄이는 이때 가지가지 차려놓고 둘러앉아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사람이 된 것인가. 제사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었구나. 남의 딸인 며느리들에게만 효와 정성과 일 더미를 강요하는 암묵 혹은 노골적인 남자들의 태도가, 뻣뻣하고 뻔뻔한 부계질서가, 딸 차별 여자차별이 소름 끼치게 싫었던 거였다. 그걸 다 떠나보내면 그저 하나밖에 없었던 엄마가 돌아가신 날을, 단 하루 기억하는 몸짓이면 되는 거였다.<135쪽>

‘한국 남자는 멀쩡해 보여도 일단 욕하고 나면 욕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서글픈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여성 대상 잔혹 범죄를 저지른 평범해 보이는 남자들에게, 여자 동기들을 성희롱하고 강간하고 스토킹한 똑똑해 보이는 남자 대학생들을 고발하는 글에, 해맑은 이미지의 남자 연예인이 저지른 가공할 만한 성범죄가 드러난 수많은 기사 끝에 저 말이 쓰여 있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 인간됨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는 것, 젊고 어린 남녀, 모두가 너나없이 관계에서 불행하다.<195쪽>

독립은 중년의, 결혼했던, 아이 있는, 나이 많은 여자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독립이란 단어의 첫 뜻이 무언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면 일단 혼자 잘 수 있게 하기, 자기 방을 만들어주기, 혼자 밥 차려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정도를 최초의 가정 내 독립으로 간주한다. 직장 갖기, 자기만의 돈으로 벌어먹고 살게 하기, 집을 떠나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기, 부모 혹은 보호자로부터의 분리까지가 진짜 독립의 실현이라 생각한다.<243쪽>

[정리=송석주 기자]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권혁란 지음 | 그래도봄 펴냄 | 31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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