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반려 햄스터와의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탐구
[책 속 명문장] 반려 햄스터와의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탐구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11.15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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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죽음은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어떤 죽음은 불공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죽음은 꼭 필요하다. 내키지 않지만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을 미루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 같은 사람에게 종말이 없는 삶은 엄청난 재앙일 것이다. 만약 2,000년 뒤에도 살아서 계속 활동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슨 일을 더 미루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그때까지도 이 책의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 차일피일 마감을 미루고 있을 것이고, 영원히 같은 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영원히 같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이고, 수천 년 동안 같은 친구들과 지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이런 상황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수백 년만 지나도 나는 죽음을 청원하고 있을 것이다(여러분 중 일부는 이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47쪽>

나는 햄스터의 심리를 전혀 모르지만, 헤르미네가 강하고 저항적인 성격이라는 것만은 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비틀거리는 헤르미네의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야구 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헤르미네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증상이 있었지만, 고집 센 성격이라 계속 자신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도 들었다. 비록 철저한 독거 생활을 즐기는 동물이며 한 케이지에 여러 마리를 넣으면 서로 물어뜯는 습성을 지니고 있지만, 헤르미네가 작은 둥지에 몸을 말고 누워서 고통을 느낄 때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심지어 아주 나중에는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케이지에서 꺼내 부드럽고 푹신한 상자에 넣고 수의사에게 데려갔을 때, 헤르미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헤르미네는 지금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헤르미네는 알고 있었을까?<141~142쪽>

무언가(죽음)가 온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죽음의 과정) 올지 모르는 상황은 유쾌하지 않은 감정과 두려움을 불러온다. 이 모든 것이 죽음에 대한 준비를 어렵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죽을 운명이며, 이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질 수는 있다. 이 일이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사실, 다른 사람은 모두 계속 타고 가는 버스에서 혼자 떠밀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닥치는 일이라는 사실에도 말이다. 당신의 임종을 지키는 가족과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혹시 저승을 믿는다면, 이 또한 불안을 진정시켜 주는 생각이다. 나는 비록 무신론자이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언젠가 그들도 자신을 따라올 거라고 믿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준비되기 전에 우리는 이 시간을 가능한 한 멀리 늦추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 몸과 정신을 건강한 상태로 돌볼 수도 있을 것이다.<174~175쪽>

[정리=전진호 기자]

『헤르미네와의 이별』
야스민 슈라이버 지음 | 이승희 옮김 | 아날로그 펴냄 | 296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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