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곳, 시옷서점을 만나다
시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곳, 시옷서점을 만나다
  • 고지우 대학생 기자
  • 승인 2021.11.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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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서점 외부
시옷서점 외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시와 비슷해 시옷서점” 시옷은 어떤 낱말의 첫 자음이 될 수도, 문자 그대로 ‘시의 옷’이 될 수도 있다. 중의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시의 특징과 같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시옷서점은 김신숙, 현택훈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이다. 주로 제주 시인들의 시집과 산문집을 판매하고, 제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의 음반도 구매할 수 있다.

시옷서점 현 대표는 『제주어 마음사전』, 『제주 북쪽』,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가면』 등 제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책들을 꾸준히 집필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서점을 운영하기 전 대전에서 그의 첫 시집인 『지구 레코드』를 썼다. 그러나 자신의 시집에 제주가 거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제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주 역사와 제주 문화, 제주 생활사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제돌이 이야기를 담은 시집 『남방큰돌고래』를 출간했다.

시인 부부는 시인 모임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빈도는 줄었으나 한 달에 한 번씩 시를 낭독하는 합평회를 가진다. 또, 팟캐스트 ‘시활짝’을 진행하고 있다. ‘시활짝’에서는 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팟캐스트는 서점에 애정을 보인 가수 박순동(뚜럼브라더스)과 즉흥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점에 손님이 왔을 때는 의향을 물어 함께 녹음하기도 했다.

시옷서점 내부
시옷서점 내부

시옷서점은 다양한 의미가 담긴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초반에는 시인을 초청해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이후 서점은 지역 문학을 더 잘 알리기 위한 취지로 ‘시를 심어볼까’를 개최했다. ‘시를 심어볼까’는 시인과 인연이 닿아있는 농부를 초청해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이다. 시와 농사가 어울릴까 걱정했던 서점의 염려와는 달리 시와 농사는 많이 닮아있었다. 지역 농산물을 사랑하듯이 지역 시인의 작품을 찾고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 부분 중 하나이다.

현 시인은 “제주도의 큰 서점에 가면 시집 코너가 있는데 제주 시인들의 작품은 한 줄밖에 비치되지 않았다. 마트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파는데 서점에서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지 않는다. 현재 지역 서점은 서울에 있는 서점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어 “어느 예술 장르나 독자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시집은 타 장르와 비교해 독자 확보가 어려워 판매조차 하지 않는 서점도 있다. 그 때문에 제주 시인들의 작품 위주로 비치하려 했다”고 말했다. 시인 부부는 ‘제주시인 굿즈’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제주 시인들의 시구를 프린팅한 수건과 셔츠를 제작한 것은 서점 설립의 계기이기도 하다.

시활짝 프로젝트 ‘너에게 닿고 싶은, 시’와 ‘우리는 한쪽 밤에서 시를 쓰고’

좋은 시를 쓴 무명 시인들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활짝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시가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시인들이 노랫말을 작사하고, 제주 가수들이 노래해 음반을 내는 형태이다. 앨범에는 ‘마음의 곶자왈’(박순동, 지윤), ‘서귀포에는 내가’(박수남), ‘가문동 편지’(러피) 등 제주가 담긴 곡들이 수록돼 있다. 시활짝 프로젝트를 통해 발매된 곡들은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제주와 시를 사랑하는 ‘부부시인’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바로 단일 장르 서점이자 작은 독립서점으로서의 현실적 한계. 손님이 와서 시집을 사가면 책을 채워야 하는데 손님의 수가 적어 구매하기가 불안하고, 그 절차도 복잡하다. 특히 전국적으로 대규모 서점이 등장하면서 소매점은 책을 주문하기가 어려워졌다. 책을 주문할 때 재고가 없거나, 재고가 있음에도 선입금을 하지 않으면 주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반품 역시 대규모 서점은 가능하지만, 소규모 서점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현 시인은 “적은 손님과 채워지지 않는 하루 일당으로 커피 판매도 생각해보고. 서점을 정리할까도 생각했지만 시집 전문 서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마음 속에 시를 그리고, 시적인 일상을 찾아 살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할 서점입니다.” 시옷서점의 서점 소개 글이다. 모든 분야에는 시적인 순간이 존재하고, 시적인 것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시집보다는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기 계발 도서를 선택하는 요즘, 무심코 펼친 시집 한 권이 무뎌진 감각을 일깨워 줄 수 있다.

[독서신문 고지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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