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김누리 교수 “나치즘의 뿌리는 경쟁 교육, 철저한 과거 청산이 지금의 독일 만들었다”
[명사에게 듣다] 김누리 교수 “나치즘의 뿌리는 경쟁 교육, 철저한 과거 청산이 지금의 독일 만들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11.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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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면, 독일은 한국에게 ‘유토피아’ 같은 국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통일 문제는 물론 일본과의 식민지 분쟁, 기후 위기 등 각종 문제마다 독일의 대응을 모범사례로 찾아보곤 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독일의 철저한 ‘과거 청산’이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다고 결론짓는다. 독일은 8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나치 부역자’를 찾아 그에 대한 단죄를 멈추지 않는다. 독일의 반성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지향성’이다.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했던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사회의 과거는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똑같은 이슈들이 반복해 등장한다. 해방 이후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뒤 외압에 의해 해체됐으며, 광주 학살극의 주범 전두환은 여전히 사죄를 않고 있다.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한국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거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한국 사회의 아픈 모습이다.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른다. 과연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책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를 펴냈다. 그동안 언론에 발표한 칼럼과 기고문의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는 책에서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과 패배주의의 뿌리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닿아 있다”며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뿜어내는 ‘백 년 동안의 악취’를 걷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과거 청산’에 대한 역설은 한국이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는 68혁명 이후 독일의 교육 개혁이 독일을 다른 사회로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독서신문>은 지난 4일 중앙대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의 과거 청산을 위해서 독일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 질문했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사진=최현식 PD]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사진=최현식 PD]

Q. 새로 내놓은 저작의 제목이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이다. 절망할 권리마저 없다는 이야기가 어두운 느낌을 전달하는데, 어떤 뜻인가.

"사실 원래 생각했던 책 제목은 ‘환멸의 시대’로, 훨씬 더 절망적인 느낌의 제목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예상치 못한 야만이 너무 많이 벌어져 누구도 이상을 꿈꿀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가 바로 환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로 그 ‘환멸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 부정적인 현실 규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서 약간의 타협을 거쳐 이렇게 지었다."

Q. 예상치 못한 야만? 무슨 뜻인가.

"한국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놀라운 사회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흔히 이런 성과를 보고 경이롭다고들 얘기하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느낀다. 내가 만나는 외국 학자들도 한국이 존경스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라.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산재사망, 우울증 모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쯤되면 한국인의 일상은 거의 ‘전시 상태’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물적, 제도적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이 돼가고 있다. 내가 문제 삼는 건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야만적인 상태가 됐는지’에 관한 것이다."

Q. 방금 말한 그런 사회적 문제가 나타날 때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독일을 이상적인 사회로 거론하곤 한다. 한국과 독일 사회의 비교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우리가 외국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외국 사회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밖을 봐야 우리를 더 잘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를 더 잘 관찰하기 위해 외국을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만 관찰해서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비교의 관점에 서 있어야 우리를 비로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꼭 독일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살면서 독일 문학을 토대로 독일인의 삶과 사회를 돌아보고, 또 그곳에서 경험한 것이 있기에 이런 비교 작업을 하는 것이다."

Q. 흔히 ‘독일’이라고 하면 ‘역사 청산을 잘 한 나라’ ‘반성하는 자세가 일본과 대비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도덕적으로 반듯한 국가가 됐다. 갤럽, 퓨 리서치 센터, 입소스 등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여론 조사 기관들이 세계 국민들을 대상으로 ‘어느 나라에게 신뢰가 가는가’ ‘어떤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믿을만 한가’를 물었을 때 전부 독일이 1등을 차지한다. 미국, 중국 등 패권 국가보다도 더 신뢰한다. 사람들이 독일의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게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다. 당시 1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들이 지중해를 넘어 들어오자 유럽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난민 사태로 인해 프랑스는 극우 정치인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했고,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난민 100만 명을 받겠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17만명을 더 받아 117만명이 됐다. 더 놀라운 건 2년 뒤 독일 총선에서 난민 수용을 선언한 메르켈 총리를 국민들이 또 선택했다는 거다. 독일의 시민 의식, 또는 정치 의식이 다른 나라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사진=최현식 PD]

Q. 사실 생각해보면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이었다. 히틀러를 필두로 한 나치당은 유태인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는데, 지금은 어떻게 다른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는지 궁금하다.

"그 원인은 68혁명(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돼 전 유럽으로 확산된 문화혁명. 당시의 정권을 붕괴시키지는 못했으나, 개인의 자유,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전 사회에 확산됐다)에 있다. 68혁명 이후 독일은 교육 개혁을 한다. 이 개혁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독일인들이 길러졌다. 이런 독일인들은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앞선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들이다. 교육 개혁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Q. 권위주의적 억압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했던 68혁명과 ‘경쟁 교육은 야만’이라고 주장했던 교육 개혁은 무슨 관련이 있나.

"이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이 필요하다. 68혁명은 서구 국가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에서는 ‘흑인 해방’, 프랑스에서는 자본의 억압으로부터의 ‘노동 해방’, 체코의 경우에는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라하의 봄’이 있었다. 당시 독일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과거 청산’이었다. 이것은 특히 젊은 세대가 외쳤던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68혁명 이전 독일은 과거 청산이 전혀 되지 않은 나라였다. 예를 들자면 1968년 당시 독일 수상은 쿠르트 게오르그 키징어(Kurt Georg Kiesinger, 1904~1988)로, 나치 당원 출신이었던 인물이었다. 그 때만 놓고 보자면 일본 보다도 더 과거 청산이 안 됐던 거다. 하지만 혁명 이후 독일은 완전히 달라졌다. 1969년 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2의 건국’이라는 표현까지 쓸만큼 새로움을 표방했다. 나치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과거 청산에 착수한 독일은 나아가 나치 집권이 가능했던 정신적 뿌리가 무엇인지 추적했다. 나치즘이 보는 세계관을 뿌리 뽑아야 했다."

Q. 나치즘의 세계관은 무엇이었나.

"히틀러는 이 세계를 하나의 ‘정글’로 봤다. 약육강식이 통용되는 정글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순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이 세계는 거대한 경쟁이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곳에선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로 나뉜다. 이는 ‘우월한 게르만족이 열등한 유태족을 지배하고 죽이는기로서니 뭣이 잘못됐냐’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러니 나치즘이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다는 의미는 경쟁 이데올로기와 우열 의식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교육 개혁을 통해서 그것을 이뤄냈다."

Q. 그 이후 독일의 학교 풍경은 어땠나.

"70년대 이후 독일 학교에서는 모든 경쟁이 사라졌다. 등수나 석차가 없어졌다. 사람을 등수로 매기는 것 자체가 야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을 경쟁시키거나 우열을 나누는 등의 경쟁이 없다. 경쟁 속에 파묻혀온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모습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독일에서 8년을 지냈는데, 그곳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열등감을 가진 이들을 본 적이 없다. 나중에 궁금해서 책을 통해 연구해봤더니 바로 독일의 개혁 때문이었더라. 반면 한국의 교육은 독일 교육에 있어서 가장 대척점에 서 있다."

[사진=최현식 PD]

Q.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 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분명히 있었지만, 공정한 바탕에서 경쟁을 하고, 경쟁의 승리를 대가로 수혜를 받는 게 무엇이 문제냐는 지적도 꽤 많았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는 것, 그 자체를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독점할 권리를 부여받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불평등과 차별이 대부분 사회 구조적인 것에 기인함에도,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만성을 최근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의 문제를 비판했으며, 데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법대 교수는 나아가 ‘능력주의는 조작(manipulation)’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한 나라가 한국, 두 번째로 심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영향 하에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이었는데, 지금 오히려 우리가 미국보다 더한 수준이다."

Q. 탈경쟁을 지향하는 ‘독일’, 반대로 경쟁을 토대로 능력주의 담론이 유행하고 있는 ‘한국’. 두 국가의 비교는 당연히 한국에도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는 과거 청산만 생각하면 일본을 먼저 바라본다. 일본이 역사 청산이 안 돼서 우리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사례를 끌어다가 일본은 왜 반성 안 하냐고 지적한다. 일정 부분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는 뭐냐면 일본보다 우리가 더 청산이 안 돼있다는 거다. 지난 100년간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재하다. 생각해보라. 우리 대한민국의 100년사는 인류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도 치르지 못한 비극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내전, 냉전, 군사독재 등 우리 역사는 정말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제대로 과거 청산이 된 적이 없다. 해방정국에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부역한 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였으나 출범 1년만에 해체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를 꾸렸으나 아무도 단죄하지 못했다. 우리 현대사는 소위 정의가 이겨본 적이 없는 역사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느낀다."

Q. 한국 사회가 소위 ‘초갈등 사회’라고 이야기들 한다. 정치, 세대, 젠더 등 모든 면에서 양극단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이것도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과거의 문제를 적당히 덮어두고 있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되나. 어떠한 사회 문제가 발생해도 그에 대한 철저한 토론이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Q. 과거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는 청산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의 악취가 계속될 것이다. 다만, 과거 우리 사회의 불의에 부역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형무소에 넣거나 할 수 없으니 최소한 진지한 반성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반드시 그 불의를 저지른 자들의 잘못이 밝혀지고, 거기에는 사회적 평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여러 글에서 독일과 한국 사회를 자주 비교하는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Q. 차기 작에 대한 구상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든 너무나 당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독일 같은 경우만 해도 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논의들이 많았다. 50년 후에는 68혁명으로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꿨다. 하지만 우리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 인간이 잘 살 수 없는 이상사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 원인을 ‘세 개의 족쇄’라는 주제로 접근하려 한다. 한국인의 정신 속에는 3중의 족쇄가 채워져 있다는 얘기다. 첫 번째 족쇄는 바로 성(性)적 족쇄로, 가장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에는 성을 터부시하는 금기들이 많다. 그것은 최초로 아이들에게 어떤 사유의 금지를 습관화하게 만든다. 이는 정신분석학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정치적 족쇄다. 국가보안법의 영향으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검열한다. 언어나 용어 하나 하나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낙인찍히지 않을까 선을 넘는 사유를 하지 못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없는 한국인들은 유토피아를 꿈꿀 수도 없다.

세 번째는 과거의 족쇄다. 한국처럼 과거 청산이 안 된 나라가 없다. 청산되지 않은 이 사회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 일정한 것 이상은 파고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작동한다. 안 그럼 살 수가 없으니. 이 세가지 족쇄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는 족쇄가 한국인이 사회적 유토피아를 꿈꾸지 못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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