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를 입에 담고
온 우주를 입에 담고
  • 이종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 승인 2021.11.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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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 리뷰

2004년 6월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모스크바 근교 페레델키노에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묘지를 찾았다. 그는 시인의 묘비에 기대어 앉아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페레델키노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들국화 한 송이를 꺾어갔다.

파스테르나크와 타란티노. 한쪽은 눈알을 뽑고 팔다리를 자르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다. 다른 한쪽은 2월이 되었다며 “잉크를 꺼내 놓고 울기”(15쪽)도 하고 “유리와 태양을 반반씩 섞어/ 보도들 위에서 빻기”(41쪽)도 한다. 타란티노는 복수심에 눈먼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나의 누이인 삶이 오늘도 봄비에 넘쳐흐르는”(43쪽) 서정시의 세계로 가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파스테르나크의 세계는 그다지 안락하지 못하다. 파스테르나크의 동료 시인이었던 만델시탐은 그의 시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온 우주를 입에 담고 아무 말이 없다. (……) 이 얼마나 섬뜩한가.”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막막한 우주. 파스테르나크의 시 「시의 정의」에서 화자는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시를 정의 내리다가 결국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 별들은 깔깔대는 게 어울리건만,/ 우주는 황량한 장소.”(55쪽) 인간은 빛나는 별들이 깔깔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 「울고 있는 정원」에서 화자가 “여차하면 목 놓아 울 준비가 되어” 있어도 세계는 “고요”(45쪽)하기만 하다. “눈물을 꿀꺽 삼키고/ 느슨한 슬리퍼를 철벅거리는 끔찍한 소리”(46쪽)만 들릴 뿐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시에서 자연은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 “하얀 울부짖음으로 부글거리는 우주”(57쪽), “재잘대는 끔찍한 정원”(69쪽). 그 소리는 결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파스테르나크도 말 없는 세계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그에게 이 공포는 동시에 아름다움이다. “벤치에 걸터앉은 라일락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의심이 생겨난다.// 그렇게 공포가 무르익는다. (……) 그렇게 시로 살기 시작한다.”(96, 97쪽) 세계는 인간의 말로 번역될 수 없어서 무시무시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부정할 수 없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파우스트처럼 “부글거리는 우주”의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주의 한 곳에 압정을 꽂아야 한다. 그러나 이 압정이 과연 믿을 만한지, 언제 뽑혀 나갈지 알 수 없기에 파스테르나크에게 ‘시로 살기’란 아름다움에 매혹된 채 공포와 의심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시로 살기’의 메커니즘은 “사회주의의 저 먼 곳”이 “곁에 있는”(115쪽) 모순적 공간, 바로 소비에트 사회에서도 작동한다. 여전히 세 가지 축은 공포, 의심, 매혹이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혁명과 내전을 겪으며 “대기도 죽음의 냄새를 풍기던”(95쪽) 사회는 1930년대 들어 안정되었지만 파스테르나크에게는 여전히 “집이 타지 같은”(96쪽) 곳이다. 무섭고 미심쩍지만 벗어날 수 없는 시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그는 스스로 매혹되는 전략을 택한다. 이 낯선 시공간에도 정겨운 과거의 삶이 도래하리라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작 <물결>의 한편에서는 ‘다시 ~하리라’라는 주문이 되풀이된다. “나무들과 집들이 다시/ 선율의 익숙함을 풍기리라.”, “다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겨울이 살림을 하러 가리라.”, “다시 저녁 무렵 산책에서/ 어둠이, 우연히 정열이 닥치리라.”(110, 111쪽) 마침내 이 주문은 스스로에게 거는 것임이 드러난다. “모스크바여, 네가 (……) 일어나 정렬하는 것을/ 다시 나는 야윈 심장 근육으로/ 듣고 말로 표현하리라. (……) 저 미래의 광기를 위해/ 나는 너를 마구(馬具)로 받아들이리라.”(111쪽) 파스테르나크는 사회주의의 심장인 모스크바를 ‘집’으로서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그에게 모스크바는 결국 짊어져야 할 ‘마구’였다. 파스테르나크의 외모는 유난히 말을 닮았다.

‘마구’는 재갈, 굴레, 고삐, 안장, 등자 등 말을 부리는 데 쓰이는 기구들을 총칭한다. 이 중에서 말을 다스릴 때 핵심이 되는 것은 입에 물리는 재갈일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며 1936년 소비에트 작가동맹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전에 비해 저는 한동안 서툰 시를 쓸 겁니다. ……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구두장이처럼 시를 쓸 겁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1930~1940년대에 쓴 그의 시들에서 이전의 신선한 시각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가 스스로 물었던 재갈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재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고난과 전쟁과 궁핍의/ 세월을 지나오며/ 침묵 속에서” 그는 “러시아의 고유한 얼굴을 보았다.”(157쪽) “생기로운 대기를 마시듯 책에 빠져”(158쪽) 있는 소년 소녀들, 소련의 미래를 보았다.

만델시탐은 파스테르나크의 초기 시를 가리켜 입과 관련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비유를 썼다. 이번에는 말하는 입이 아니라 숨을 쉬는 입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읽으면 목구멍이 깨끗해지고 호흡이 강해지며 폐도 새것처럼 된다.” 생전에 출간되지 못한 마지막 시집 『날이 갤 때』의 시들도 호흡을 튼튼하게 해준다. “광대한 도시의 바다 위로/ 그랜드피아노를”(261쪽) 끌어올리는 덕분에 읽는 사람도 높은 곳에 올라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게 된다. “우엉을 뽑고” “창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는”(243쪽) 7월의 재잘거림을 들어 보려고 잠시 숨을 참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밀한 떨림에 휩싸여/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당신의 오랜 예배를 끝까지”(245쪽) 지켜보기 위해서는 숨을 고르게 쉴 줄 알아야 한다. 블로크는 푸시킨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숨 쉴 것이 없을 때 죽어 간다.”

타란티노의 영화 「킬 빌」의 주인공 키도는 산 채로 관에 갇혀 땅에 묻힌다.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하지만 스승에게 배운 대로 호흡을 가다듬고 촌경(寸勁)을 활용해 관에서 탈출한다. 파스테르나크의 시를 읽는다고 다른 세상으로 탈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온 우주를 입에 담을” 폐활량은 얻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글 : 이종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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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2021-11-09 17:25:46
역시 우주는 신비합니다 기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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