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도시에서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
[책 속 명문장] 도시에서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0.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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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1980년대까지 ‘종로서적’은 서점이자 만남의 광장이었다. 핸드폰도 추억의 삐삐도 없던 그때 ‘종로에서 만나’라는 말은 곧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리던 종로서적을 의미했다.<17쪽>

삼각지는 시골에서 상경한 관광버스가 꼭 들르는 관광코스였다. 처음 접하는 네 방향 출구인 입체 교차로를 돌다가 출구를 못 찾아 헤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아니건만 한 번 돌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연장된다는 속설의 입소문이 나서 노인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기본으로 7번은 돌고 갔다는 이야기와, 3억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하여 ‘3억 원짜리 도너츠판’이라는 별칭도 얻었다.<71쪽>

조선 시대에 목축장과 척박한 농지로 사용되던 여의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16년부터다. 일제는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하고 거주민을 퇴거시켜 그해 9월 길이 600m의 활주로와 격납고 공사를 끝내고 한반도 최초의 비행장을 만들었다. 일본과 만주를 잇는 중간 거점이 필요한 탓이었다.<102쪽>

가리봉시장은 1976년에 만들어져 구로공단 노동자의 일상과 문화생활이 이뤄지던 곳으로 여공들이 살던 벌집이 있는 곳이다. 가리봉시장은 가리봉동과 라스베이거스의 합성어인 ‘가리베가스’라고 불렸다. 구로공단 전성기였던 1970, 1980년대 이곳은 사람으로 넘쳐나는 유흥가로 구로공단에서 좀 노는 언니, 오빠들이 모이는 ‘핫 플레이스’였다.<236쪽>

지금은 강남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는 ‘영등포 동쪽’ 또는 ‘영등포와 성동 중간’이라는 뜻으로 ‘영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실제로 1970년대에 시작된 개발 계획의 정식 명칭도 ‘강남 개발’이 아닌 ‘영동 개발’이었다. 그 당시는 강북이 곧 서울이었고, 한강 이남의 광주군 사람들은 강 건너를 ‘서울’이라고 불렀다.<250쪽>

[정리=송석주 기자]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펴냄 | 304쪽 | 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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