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리는 힘, ‘헛소리’에서 출발한다
‘기업’ 살리는 힘, ‘헛소리’에서 출발한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0.3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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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의 싱그럽고도 아련한 추억을 담은 영화 <건축학 개론>의 포스터 글귀다. 누군가는 이 글귀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한 문장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정서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가 아닌 말의 힘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카피라이터(copywriter)의 힘이다.

카피라이터는 포스터나 광고의 글귀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침대는 과학이다”(에이스침대), “남편을 구워 삶았다”(테프론 프라이팬), “전자제품 살 땐?”(하이마트)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단 하나의 문장이 소비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그야말로 대박 친 기업들이 많다. 모두 카피라이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피라이터들은 어떻게 이런 기발한 문장을 생각해냈을까. 광고 회사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승용은 책 『헛소리의 품격』에서 “카피라이터란 헛소리에서 똑소리 나는 생각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웃어넘길 농담이나 그저 웃기는 소리로 치부하는 말이 카피라이터의 생각을 거치면 빛나는 아이디어로 변환한다. 바로 ‘고품격 헛소리’다.

이승용은 증권사 광고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 술자리에서 “호권, 당랑권, 그다음 ‘OO증권’이 나오는 권법 액션물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말했다가 친구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며칠 뒤에 광고주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광고가 됐다. 후속편도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헛소리가 밥값을 한 셈이다.

그는 “헛소리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 격조 있는 헛소리는 밥값을 벌어다 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며 “이런 종류의 말들을 나는 ‘고품격 헛소리’라고 부른다. 듣는 순간 ‘헛?’ 물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면서 공감하게 되고, 끝내는 ‘헐!’ 감탄사를 외치며 무릎을 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상적인 말이나 문장은 포스터나 광고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승용은 배우 최화정이 유행시킨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을 예로 든다. 그는 “정말이지 완벽한 어불성설이다. 모든 음식에는 칼로리가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도 안 되는 말 덕분에 야심한 밤에도 라면을 끓여 먹을 그럴듯한 핑계가 생기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 다이어트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받지 않았는가?”라고 되묻는다.

인기 있는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 사례도 많다. 가령 2002년 현대카드의 광고 문구였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당시 광고계를 뒤집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 문구를 패러디해 일부 횟집에서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가라”를 현수막으로 제작해 걸어 놨다. 사람들은 “뭐야?”라고 비웃으면서도, 이윽고 공감과 감탄사를 연발하며 퇴근길에 그 횟집에 들러 회를 떠가게 된다.

이승용은 “나는 이런 헛소리들로 광고주와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다. 좋은 헛소리에는 똑소리 나는 인사이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며 “나의 굳어 있던 머리를 무장해제시키고 호기심을 유발하던 한 문장도,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마디도, 돌이켜보면 헛소리에 가까운 것들이었다”고 말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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