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일당백’ 정승민 “사람들이 고전을 통해 인생의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명사에게 듣다] ‘일당백’ 정승민 “사람들이 고전을 통해 인생의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0.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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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민 [사진=최현식 PD]

인기 독서 유튜브 ‘일당백(일생동안 읽어야 할 백 권의 책)’의 ‘지식자판기 정박’으로 불리는 사람. 바로 정승민이다. 대학에서 인류학과 인구학을 공부한 그는 따뜻한 인간애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책 소개로 유명하다. “가르침이 아니라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 서평의 역할”이라는 정승민은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고등학생 때 『이방인』을 읽고 느꼈던 기분이 있다. 당연히 말로 표현은 못 한다. 그 후로 그나마 책을 가까이하고, 소설 읽기를 10년 넘게 한 것은 그때 그 기분 때문이다. 그래서 일당백은 정말 고맙다. 뭔지 모를 충만한 느낌. 설명되지 않는 눈물. 일당백을 들으며 그럴 때가 있었다는 걸 느낀다. 그게 정말 고맙다.” - ‘일당백’ 구독자 中

방송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뿌듯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일당백을 듣고 청춘 시절에 읽었던 책의 질감과 당시의 분위기, 열심히 독서에 천착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기억을 되찾게 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들을 때라고 했다. 좋은 책 소개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독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서평가 정승민. 지난 15일 홍대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Q. 독서 유튜브 ‘일당백’에서 활약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구독자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청춘이라는 시절이 그렇다. 내 감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가 부족하고, 논리적 사고가 충분히 여물지 못했던 시기이지 않나. 그런 시기에 읽었던 책들이 아련한 기억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런 막연한 느낌과 감정이 오래간다. 논리에 기반한 것들은 의외로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설명되지 않음, 그것으로부터 기인한 감정이 일당백을 들으면서 다시 살아났다는 반응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Q. 학창 시절 ‘문학청년’이었나.

“고등학교 때 문예반이 있었는데, 그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독서 배틀 같은 걸 했다. (웃음) 나는 소설이나 시보다 오히려 평론을 많이 읽었다. 80년대 같은 경우는 문학평론가들이 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평론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세우고 난 뒤에 개별 작품으로 들어갔다. 그런 글들이 세상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줬다. 그래서 문학평론집을 많이 읽었다. 특히 김우창, 김현, 김윤식, 정과리, 성민엽 선생님들의 글들을 좋아했다.”

Q. 당신도 지금 평론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사실 내가 하는 일은 평론이라기보다는 책에 관한 코멘트 정도다. 일당백에서의 내 역할도 그렇다. 한 작품이 있으면 거기에 다양한 연구들이 있는데, 그 연구들이 사장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연구들이 일종의 문학을 읽어내는 ‘요리법’이라고 한다면, 문학을 자기 방식으로 요리해서 섭취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요리법을 통해서 튀겨도 먹고, 소스를 뿌려서도 먹고, 구워서도 먹으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런 연구들이 너무 많은데, 그걸 평론가나 학자들의 상아탑에만 갇히게 하면 좀 안타깝지 않나.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요리법들을 방송에 가지고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Q. 직접 소설이나 시를 써볼 생각은 없었나.

“살다 보면 일상을 벗어난 경험을 할 때가 있잖나. 그럴 때 시나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해보니까 역시 안 되더라. (웃음)”

Q. 남의 작품에 말을 더하는 일이 피로하진 않나.

“미국의 평론가 에드문드 윌슨이 쓴 「상처와 활」이라는 글을 보면, 상처를 입고 섬에 고립이 되어서 할 일이라고는 계속 화살 쏘는 일밖에 없지만, 그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사람은 새로운 영역으로 비상하게 된다. 나는 아직 문학을 통해 타인의 세계와 경험을 엿보는 것만 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런 일이 피로하거나 지겹지 않다.”

Q. 방송에서 영화 <만다라>와 책 『만다라』를 비교해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소설 원작의 영화 중 소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있었나.

“책은 정말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데, 그게 이제 소위 말하는 ‘영상 언어’로 구현될 때 필연적으로 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나 필립 코프먼 감독의 <프라하의 봄>의 경우에 원작 소설도 훌륭했지만, 영화도 참 좋았다.”

Q. 원래 <서울신문> 기자였다. 기자 생활은 어땠나.

“4년 정도 기자 생활을 했다. 나는 기자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 때 작가들을 보면 대부분 기자를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신문사에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더라. 입사하고 보니까 기사 쓰는 일이 철저한 협업이었다. 바이라인(by-line : 신문이나 잡지에 기자의 이름을 넣는 일)에 적힌 기자가 그 기사를 다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취재를 해서 초고를 쓰면, 선배가 고치고, 또 그걸 데스크가 고친다. 최종적으로 편집 기자가 제목을 달고 교열을 본다. 그런 다양한 과정을 거쳐서 기사가 나온다. 왜냐하면 기사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니까. 근데 그 과정이 혼자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그게 무슨 말인가.

“산문을 잘 쓰려면 시를 먼저 써야 하고, 또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산문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산문과 시가 같이 가야지 좋은 글이 된다. 신형철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는데, ‘좋은 글에는 뭔가 시적인 냄새가 난다’는 거지. 시적인 무엇이 깔려 있지 않으면 그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일수록 협업을 통해 글 쓰는 일을 해봐야 한다. 정반대라고 생각하는 작업을 병행할 때 습득할 수 있는 감각이라는 게 있다. 그래야 자기 망상에 안 빠진다.”

Q. 기자를 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기자라는 직업이 좀 그럴듯하지 않나. (웃음) 조직이 주는 안온함도 있고, 어디 가서 기자라고 하면 손해 볼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직업적으로 말하자면 생각보다 기자라는 직업이 정치에 가깝더라. 내 입맛에 맞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대기업 직원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업무적으로 술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 그런 게 싫었다.”

Q. 작년에 『우리 시대 고전 읽기』라는 책을 펴냈다. 79권의 책 이야기가 담겼는데, 책 선정 기준이 무엇인가.

“특별한 기준은 없고, 내가 읽은 책들 위주로 담았다. (웃음)”

Q. “이 책의 목적은 실마리다”고 말했다.

“방황이 인간의 특권이라고 하지만 길지도 않은 인생을 매일 방황만 하고 살 수는 없잖나. 그럴 때, 그래도 오랫동안 검증돼서 살아남은 것들이 고전이니까. 사람들이 그 고전들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인생의 실마리를 얻으면 어떨까 싶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댓글들이 일당백을 듣고 이 책을 읽고 싶었다는 거다. 조금만 품을 들이면 큰돈 안들이고 인생의 좋은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게 고전 읽기다.”

Q. 서평의 역할은 ‘가르침’이 아니라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했던 말이다. 지성이란 바로 ‘That reminds me of another.’ 즉 지성이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어떤 책이나 영화가 떠오른다면 그게 좋은 지성인의 역할이다. 자꾸 뭔가 자극을 주게 만드는 거지. 달리 말하면, 사람에게 빈틈을 생기게 만드는 거다. 책을 읽으면 뭔가가 자꾸 채워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반대한다. 책을 읽으면 우리의 고정관념에 자꾸 빈틈이 생겨야 한다. 내 생각에 계속 균열을 가하는 책이 좋은 책이고, 그게 지성인의 역할이다.”

Q.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가 통과의례로서의 사용가치가 상당하다고 평했다. 당신에게 통과의례와도 같은 책이 있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년 뒤에 소련이 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88년부터 국가보안법으로 묶어놨던 금서(禁書)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문자 그대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가 도래했다. 온갖 이념이 성하던 시대였던 거다. 그때 이 책이 나왔다. 특히 나처럼 직접적으로 화염병을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법전을 파면서 고시 공부를 하지도 않았던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책이었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당시 방황하는 대학생들에게 나름대로 어필한 측면이 있고, 이성복의 『남해 금산』도 좋았다. 또 김영현, 공지영의 문학들이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 방황, 좌절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청춘들의 사랑을 받았다.”

Q. 당신만의 독서법은 무엇인가.

“나는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다. 집안에서 읽을 땐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읽는다. 요즘은 동네 뒷산 같은 곳에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서 읽을 때가 제일 좋다.”

Q. 요새는 사람들이 전자책 등 독서 플랫폼을 통해서 많이 읽기도 하는데.

“전자책이 참 편리하다. 근데 나는 책을 들고 읽을 때의 독서 경험이 너무 좋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한눈에 들어오고, 밑줄도 긋고, 또 읽다가 커피를 흘려서 자국이 묻을 수도 있고. 그리고 나중에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지나간 시간이 다시 살아난다. ‘내가 이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같은 것들. 그래서 전자책보다는 책의 물성, 그것이 가져다주는 경험을 더 좋아한다.”

Q. 유튜브와 팟캐스트 방송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칼럼도 쓰고 있다. 말과 글 중에 뭐가 더 편한가.

“말이 더 편하긴 하다. 근데 구독자들이 늘어나면서 말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특히 팟캐스트와 달리 유튜브는 내 얼굴이 나오는 거니까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하는 게 많다. 그러다 보니 준비한 것 이상은 잘 안 하게 된다. 아무래도 순발력 발휘가 힘든 거지. 방송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웃음)”

Q.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고 싶은가.

“예전 같았으면 사마천의 『사기』라든지 『조선왕조실록』 등을 가져갔을 텐데,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가야 한다면, 내 책을 가져가고 싶다. 책 홍보는 아니고. (웃음) 이 책에 여러 고전에 관한 내 생각이 담겨 있으니까 이걸 가져가서 읽다 보면, 책 쓸 때의 느낌이나 생각이 떠오를 것 같다. 결국 무인도에서 산다는 건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지 않나.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이 결국은 상상이고, 상상을 촉발하는 게 책의 역할이고, 그 상상은 결국 나의 상상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쓴 책을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하고 싶다. 코로나19로 많이 어려워졌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책 이야기를 하고 싶다. 10명 정도 소규모로, 책 한 권을 집중적으로 읽고, 이야기하고 싶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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