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0.03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자인(design)이란 사전적으로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디자인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실체적인 무엇’이다. 가령 학교의 ‘나무 의자’와 PC방에 있는 ‘게이밍 의자’는 사용 목적, 소재, 기능 등 여러 방면에서 다르다. 이와는 조금 다른 예도 있다. 기저귀 교환대는 거의 여자 화장실에만 있다. 이는 아이의 기저귀를 교환하는 일이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에 기인한다. 편견에 의한 디자인인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우리의 물리적인 생활과 사상까지 파고든다. 책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의 저자이자 미 의회에서 화장실 평등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캐스린 H. 앤서니는 “디자인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정의한다”고 말한다. 일상의 디자인이 지닌 편견을 파헤치고, 포용적 디자인을 위한 행동을 역설하는 그는 “디자인은 우리의 삶을 특정 형상으로 빚는다”며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은 그 점을 조명한다”고 말한다.

앤서니의 지적처럼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각종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건물 등의 디자인이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디자인’의 관점에서 탐색한다. 대중교통이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는지, 키가 작거나 몸집이 큰 사람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 저자는 “부실한 디자인들을 감내하며 좌절과 난감함을 맛보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설명한다.

책에는 흥미로운 예시들이 많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이 박물관에는 하루 4,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박물관의 특징 중 하나는 ‘투명 계단’과 ‘유리 바닥’이다. 그렇게 디자인된 이유는 박물관 공간을 자연광으로 채우겠다는 건축가의 아이디어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발 아래위로 내려다보이는 박물관의 전경에 매료된다. 하지만 앤서니는 “바로 이곳이 여자들의 치마 속을 엿보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지적한다.

이런 예는 무궁무진하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있는 프랭클린 카운티 법원 청사는 1억 달러를 넘게 들여 지은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 내부가 투명한 유리 계단으로 지어져 원피스나 치마를 입는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해당 법원에 근무하는 줄리 린치 판사는 “신축 건물을 개장하면서 이용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공간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와 동떨어진 과학적 사물이 아니다. 공간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 曰

위 사례들에 대해 앤서니는 “어째서 누군가는 특정 공간과 장소와 제품의 디자인으로 인해 부당한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가? 뒤집어 생각해서, 모두에게 유리하고 공정한 환경을 창조하는 혁신적 디자인은 없을까?”라고 질문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아이의 한입에 들어가는 캡슐 세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왼손잡이, 손이 닿지 않는 지하철 손잡이, 깨알 같은 약봉지 글자 등의 예를 통해 일상의 수많은 제품과 공간이 ‘편향의 토대’ 위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저자는 권력자에 의해 설계된 패션, 제품, 건물 디자인이 소수자에게 가하는 폭력과 지배의 방식에 대해 폭로하며, 디자인을 바라보는 전복적인 시각이 불평등한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시정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용채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박용채 070-4699-7368 pyc4737@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