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민주주의’. 얼핏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 사이에는 사실 깊은 상관성이 존재한다. 귀착점은 ‘도서관이 발전할수록 민주주의도 활성화된다’는 것.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지적 성숙을 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공공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방문한 시민들은 책을 참고하며 자신만의 독립된 생각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견해가 모여 숙의와 소통을 이루면, 그것이 민주주의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현진권 국회도서관장은 최근 『도서관 민주주의』(살림)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정치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는 정치권에 ‘공공 도서관’ 건립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라고 요구한다. 그런 한편으로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공 도서관에 대한 수요를 당당히 밝히라고 말한다. 국회도서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전국 도서관을 방문했던 그는 “공공 도서관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유용한 정치 아이템”이라며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정치인이 있는 지역구에는 새로운 공공 도서관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최신 도서관 트렌드에 맞게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방문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조용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기존 도서관은 ‘빚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최근 건립되는 도서관은 독서실 같은 딱딱한 분위기를 탈피하고 있다. 독서뿐만 아니라 음악, 와인, 춤 등 각종 문화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근 공공 도서관 건축의 트렌드다.
현 관장이 제시하는 도서관 10곳은 나름의 철학과 지역의 개성을 살린 도서관들이다. 청소년 문화에 초점을 맞춘 남양주시 이석영 뉴미디어 도서관은 청소년들의 댄스 연습실과 음악녹음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 열람실에서도 자유로운 담소가 가능하다. ‘독서실 같은 도서관을 만들어도 청소년들이 이용하지 않는다면 무용하다’는 지자체의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생태 체험 코스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수원 광교푸른숲 도서관, 마치 미술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의정부시 미술도서관도 참고할 만하다. 이들 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의 발길을 모으는 동시에 지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 관장은 정치인들이 ‘어떤 공공도서관을 건립할지’를 두고 선거판에서 경쟁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도 하나의 시장이다. 정치인이 정책과 시설에 대한 공급자라면, 유권자인 국민은 정치인들이 내놓은 안에 대해 선택하는 수요자다. 유권자인 지역 주민과 공급자인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지역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공 도서관이 건립될 수 있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게 현 관장의 논지다.
정치 수요자인 주민들이 더욱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필요가 있다. 현 관장은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존재한다는 경제학적 법칙에 따라 ‘공공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유권자들이 요구는 정치 시장에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한다. 그는 “지역민이 서로 가깝게 소통하고, 공공 부문에 원하는 바를 표현할 때,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발전한다”며 “정치인들에게 도서관으로 경쟁하는 정치 풍토를 만들자”고 말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