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은 분위기다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은 분위기다
  • 스미레
  • 승인 2021.09.10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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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서점에 들른 적이 있다. 보이는 건 온통 책뿐인데 신기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 오후의 빛과 섬세한 향이 흐르는 그곳에 서 있었을 뿐인데 그대로 주저앉아 책을 읽고 싶어졌다. 책 읽기란 이토록 분위기에 약한 것이로구나. 슬쩍 웃는데,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 일상에도 책 읽기 좋은 기분과 분위기를 입혀주면 어떨까?’ 필연처럼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 아이가 책을 읽을 때면 조용히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살금살금 커튼을 쳐주거나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쌀쌀한 날에는 부드러운 담요를 둘러주고 더운 날엔 살살 부채질을 해주기도 한다. 아이가 책을 읽을 때면 물이 끓는다거나, 언성을 높이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마음을 쓴다.

단출한 실내는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음악, 아로마 오일 향으로 메운다. 아이들은 냄새에도 민감해서, 집 안에 방향제를 두었을 때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며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개인위생에도 신경을 썼다. 종일 붙어있는 엄마에게서 좋은 향이 나길 바라서다. 

주로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줬기에 촉감이 좋은 옷을 입는다. 목소리도 나직하게 가다듬어본다. 조금 어설퍼도 쾌적하고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싶은 까닭이다.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거나 피곤한 날, 아픈 날은 굳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런 날은 무얼 하든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는데, 아이가‘책 때문에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반대로 나들이 가는 날이나 기분이 좋은 날은 그와 연관되는 내용의 책을 읽어주어, 명랑한 기분과 책이 자연스레 연결되게 하였다.​ 책을 읽는 아이가 지루해 보이면 시원한 주스나 맛있는 간식을 건네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거나 손, 발, 배,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어 오감을 자극하여‘책=좋은 기분’이 될 수 있도록 도왔다. 즐거운 감정과 연결된 행동은 무의식에‘좋은 것’,‘또 하고 싶은 것’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하여, 책에 관해서는 어떠한 잔소리나 부정적인 말도 내지 않는다. 아이에겐 책 정리를 시킨 적도 없다. 읽고 난 책을 매번 제자리에 꽂아야만 한다면 책을 빼 드는 일조차 부담이 될 테니 말이다.

집안을 분방하게 표류하는 책들을 쓱 집어 읽는 건 이제 우리의 자연스런 풍경이 되었다. 아이는 그렇게 책과 친해졌다. 기분이 좋은 날은 물론 피곤하거나 불쾌한 날에도 틀림없이 책을 잡는다. 튼튼한 다리 하나가 세워지듯, 아이 안에‘책=기분 좋은 것’이란 촘촘한 회로가 놓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다’는 말의 빈틈에선 적지 않은 것이 올라온다. 그날의 냄새, 장면, 맛, 소리, 촉감이 알알이 박혀있다. 바로 이것, 어린 날의 여유로운 독서 체험, 책 읽는 분위기와 이미지의 중요성을 잘 아는 애서가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어린 시절의 날들 가운데 아마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과 더불어 보낸 날들, 살지 않고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그런 날만큼 충만하게 산 날들이 없을 것이다. … 그 독서들이 우리 안에 남기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독서를 한 장소와 날의 이미지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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