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숨은 얼마인가요?”
“당신의 목숨은 얼마인가요?”
  • 연아람 『생명 가격표』 역자
  • 승인 2021.09.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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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스>(2021)에서 유명 로펌의 대표 파트너 변호사이자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인공 파인버그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생명의 가치는 얼마일까?”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도 여러 숫자가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5억?’, ‘10억?’, ‘20억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파인버그는 학생 중 캔자스 주 출신이라는 배런이 콤바인에 끼어 죽는 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하고 간단한 역할극을 시작한다.

“배런의 사망에 대해 합의금을 얼마 지급하면 될까?”
파인버그의 지목으로 졸지에 콤바인 회사 변호인 역을 맡은 학생 첸이 대답한다.
“2백만 달러...?”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배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끼어든다.
“야, 내가 로스쿨 졸업하면 서른 전에 그 정도는 벌어!”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유쾌하게 웃는다.

‘....... 평생을 일해도 난 20억을 벌 수 없는데 내 패기가 지나쳤군.’

『생명 가격표』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분명 ‘내 생명은 얼마짜리일까’ 재미 삼아 가격을 점쳐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별한 기준 없이 자존감과 자기애로만 따지면 충분히 기분 좋은 상상일 수 있다. 나는 영화 ⌜워스⌟의 오프닝 장면을 보고 20억의 꿈을 접었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의 생명 가치는 부르는 게 값이고 그 값은 나름의 이유에서 모두 타당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생명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꽤 도발적인 관념이다. 추상성이 가득하고 윤리적 논의에나 어울릴 법한 ‘생명’이란 단어에 가장 실제적으로 구체적인 ‘가격’이라는 단어의 결합은 직관적으로도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쾌하고 불경스럽다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도 있다. ‘감히 누가 내 생명에 가격을 매겨?’ 때문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충격과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차례로 밀려온다. 먼저 내 생명에는 시시각각 생명 가격표가 붙고 있다는 사실에, 다음으로 생명 가격표를 결정하는 공식에는 내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요소가 투입된다는 사실에, 마지막으로 나조차 나도 모르는 새 남의 생명에 가격표를 매기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생명 가격표』에는 기업과 정부에서 비즈니스 결정과 정책을 수립할 때 활용되는 복잡한 이론, 개념, 공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은 통계전문가이자 데이터모델러다. 언뜻 ‘가격’과는 꽤나 어울리지만 ‘생명’과는 거리가 먼 직업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생명에 가격을 매기는 과정들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언제나 마지막에는 그 공식과 수치들 뒤에 감춰진 생명을 조명한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끊임없이 독자의 관심을 요구하는 생명은 소득과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자 기준이 되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다. 『생명 가격표』는 한마디로 통계전문가가 숫자로 말하는 인권 이야기다.

‘생명 가격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귀중한 인간 생명에 가격표가 붙는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절대적인) 액수가 얼마인지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가격표가 책정되고 누가 왜 더 낮은 가격으로 매겨지느냐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생명은 사회 보호라는 테두리 밖으로 쉽게 버려지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이 『생명 가격표』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생명 가격표가 책정되는 방식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생명 가치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그 사람의 생전 소득이다. 희생자의 소득이 높으면 민사소송에서 배상금이나 합의금이 높아진다. 소득과 생명 가격표를 연결 지으면 발생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연간 50억을 버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연간 5천만 원을 버는 교사의 생명 가격표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교사보다 이 사회에 100배 더 큰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없다. 두 번째는 소득에 이미 차별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소득을 결정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성, 계급,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과 학력(학벌 포함),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인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매우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소득 구조에 이미 각 요소에 따른 차별로 인한 불공정성이 짙다. 소득에 기준을 두고 책정된 생명 가격표가 불공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불공정하게 낮은 생명 가격표를 받은 사람들은 대개 높은 가격표를 받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는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 사건으로 이와 같은 경우를 매년 수도 없이 목격한다. 올해만 보더라도 평택항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컨테이너 벽에 깔려 사망한 故 이선호 군 사고가 있었다. 이런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화, 고용 구조라는 요인 외에도 기본적으로 기업이 비용편익분석 과정에서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투자보다 합의금(생명 가격)과 과징금을 지불하는 편이 재무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작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의료 체계가 극한에 몰렸을 때 의사들이 고령 환자들의 치료를 포기한 일도 마찬가지다. 의료 자원에 대한 분배 결정 과정에 생명 가격표가 주요 고려 요소로 작용하는데 고령 환자들이 생명 가격표를 낮게 받았기 때문이다.

올여름 유럽 지역에 전례 없는 폭우를 가져온 지구 온난화도 결국은 생명 가격표의 잘못된 책정에서 비롯된 문제라 할 수 있다. 미래의 생명은 보통 ‘할인’이라는 개념 때문에 현재 생명보다 낮은 가격표를 책정받는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과 미래 세대의 생명과 안녕을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사용을 택했다. 미래 세대의 생명에 낮은 생명 가격표가 책정된 탓에 기후 온난화를 막는 일의 편익이 비용보다 작은 것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를 경고했을 때 미래의 생명에 현재 세대의 생명과 같은 가격표를 책정했더라면 2021년 여름의 역사적인 폭우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례 외에도 오늘날 인간의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지는 경우는 아주 많다. 우리가 받아드는 생명 가격표는 생명의 실제 가치도 아닐뿐더러 그 책정 방식이 다양한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현실을 바꾸자고 말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독자들에게 이런 부당함을 바로 잡는 데 있어 개인으로서 가장 실천하기 쉬운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생명 가격표의 불공정함을 알고 그 가격표를 최대한 공정하게 매기도록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는 것. 더불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에서 차별을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 물론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권과 생명의 더 완전한 보호다.

“억만장자 한 사람의 죽음이 평범한 사람 100명의 죽음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업이나 정부가 고작 몇 푼을 아끼느라 사람의 생명을 불필요하게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 가치를 불공평하게 판단하여 기본인권을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생명 가격표』 p277)

글 : 연아람 『생명 가격표』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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