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이 그 어느 때보다 존중받는 시대이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이익을 도외시하거나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짐짓 모른 척하라는 뜻은 아니다.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올바른 개인주의’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모든 제도에 있어서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사회 일반의 이익을 눈감으라는 말이 아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나를 살리는 관계』는 개인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가에 관해 역설한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나라서 참 다행이다』로 프랑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작가 크리스토프 앙드레이다. 그는 이 책에서 상호의존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건설적으로 작용하는 조건들을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의존하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만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생각과 믿음에는 얼마간 오류가 있다. 오히려 타인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으로부터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앙드레는 “상호의존 관계가 밀접한 공동체일수록 풍요롭고 발전과 지속 가능성이 높다”며 “나아가 구성원의 자기실현이 복되게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한다.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관계, 긍정적인 상호의존, 관계의 균형 등을 위해서 필요한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바로 ‘느슨한 연대’와 ‘건강한 거리두기’이다. 연대하되 느슨하게, 거리를 두되 위급할 때 손을 내밀면 금방 잡아줄 수 있는 간격. 그것이 요즘 세대의 관계 맺기 방식이다. 이는 ‘돌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앙드레는 “돌봄에는 일단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 논의는 도움받는 이에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병적이고 일방적인 이타주의는 오히려 수혜자의 무효용감과 무능감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건전하고도 적합한 돌봄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묻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해주는 게 아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이에 대해 앙드레는 “먼저 타인의 욕구를 경청하라”고 강조한다.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돌봄만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의존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꼭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타인에게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때에도 더 큰 의욕과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한다. 사람 사이의 애착은 필수 불가결하며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독립을 강조하는 삶의 태도를 지양하고, 도움을 받을 줄 아는 것도 주도적 삶의 일부라고 앙드레는 말한다.
도와달라고, 도와주겠다고 손 내미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최근 돌봄 문제에 관해 “내 한 몸 돌보기도 벅찬데 어떻게 남을 돌보느냐고 한다. 순서가 틀렸다. 우리가 남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기에 결국 내 한 몸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라며 “나는 누군가의 남이다. 우리는 타인의 돌봄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나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남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