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혹은 100억, 아니면 0원… 목숨값은 공정하게 매겨지는가
1억 혹은 100억, 아니면 0원… 목숨값은 공정하게 매겨지는가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8.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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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자신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광차 문제(Trolly Problem)를 제기한다. “두 철로에는 5명의 인부와 1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열차 기관사인 당신이 두 길중 하나를 가야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후자를 선택했다고 치자. 그럼 5명의 생명은 1명의 생명보다 무겁고 귀한 것인가. 추가로 질문해보자. 본인이 선택한 1명이 배우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생명의 가치는 동일한 것일까.

조금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자. 너무도 먹먹해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건네진 배·보상금은 희생자의 나이, 직업, 성별에 따라 적지 않게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왜 그런 차이가 주어져야 하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나온 책 『생명 가격표』(민음사)는 정독해볼 가치가 있다. 책은 자본주의 사회가 생명 값을 매기는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논픽션이다. 저자는 유엔의 주요 사업에서 수석 데이터 모델러 역할을 해 왔던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다.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다. 당시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3,000여명이 희생됐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선전포고를 하는 한편, 국가 차원의 보상 기금을 창립해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려 했다. 모든 희생자들은 이 재앙 한번으로 생명을 잃었는데 보상금은 천차만별이었다. 미성년자들의 보상금은 모두 동일했지만, 성인들은 25만달러부터 700만달러까지 저마다 달랐다.

이런 계산법은 당시 미 법무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연방 검사 출신 케네스 파인버그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는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 등 세 요소를 합산해 ‘생명 가격표’를 만들었다. 비경제적 가치는 모든 희생자에게 25만달러의 동일한 금액이 책정됐다. 피부양자 가치는 모든 피부양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됐다. 배우자가 있으면 보상금에 10만 달러가 추가됐고, 피부양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10만달러가 추가됐다.

관건은 경제적 가치였다. 희생자의 소득에 기반해 책정되면서 결과 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생자의 나이, 정년까지 남은 햇수, 평생 기대소득, 각종 수당 및 기타 혜택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됐다. 최저액과 최고액간에는 30배 차이가 났다. 파인버그는 훗날 자신의 저서에서 그 계산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외에도 생명을 모두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지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또 자주 발생한다. 사건 사고에 언론이 얼마나 집중 보도하느냐에 따라서도 목숨값은 달라진다.

인간에 대한 보상금은 결국 인간에 의해 매겨진다. 사람들마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목숨값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같은 현실을 긍정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생명값을 매기는 방식이다.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그는 ‘비용편익분석’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보상금과 보험금 지급은 비용편익분석으로 이뤄진다. 기업들은 간혹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제품에 결함이 발생했을 때 리콜(회수) 시 드는 비용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합의금 예상 비용을 비교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사회가 매겨온 생명 가격표가 결코 투명하지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값이 낮게 매겨진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 법적 권리, 가족이 쉽게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마저도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꼬집는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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