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다른 욕망은 아무리 커도 죽을 때가 되면 그친다. 교만만큼은 염을 해도 관에 그대로 드러나고, 장례를 치러도 그 묘에 나타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욕망은 극복하고 나면 점차 소멸하거나 힘을 잃어 다시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다. 혹 그 장소를 바꾸고, 혹 그 시간을 바꾸면서 자주 끓어넘칠 것 같지만, 장작불을 빼버리면 차츰 가라앉는다. 색욕 같은 것은 젊어서는 실컷 즐겨도 늙고 나면 시들해진다. 분노 따위는 참으면 떠나가고 고요해지면 물러난다. 오직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딱 붙어다닌다.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말할 때든 침묵할 때든, 무리와 있거나 혼자 있거나 벗어날 수가 없고 덮어 가릴 수가 없다.<38쪽>
남을 헐뜯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 발을 둘 곳에 입을 두기 때문이다. 돼지는 이름난 정원에 들어가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맡지도 않고, 맑은 샘에서 씻지도 않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다만 더러운 진흙을 달게 여기고 편안해할 뿐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에게서 칭찬할 만하고 본받을 만한 좋은 덕과 높은 재주 및 많은 재능을 보게 되면, 묻기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한다. 그러다가 드러나지 않은 허물과 작은 잘못만 있으면 침을 흘리며 듣고 다급하게 물어 함부로 퍼뜨린다. 마음에 쌓아두고 입과 혀로 불어대는 것이 마치 나쁜 기운을 펴는 것과 다를 바 없다.<161쪽>
성 아우구스티노가 탐욕과 인색함으로 재물을 모으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토록 힘들게 수고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내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괴롭게 애쓰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아들의 아들을 위해서겠지요.” “이렇게 해서 끝없이 이르더라도 자기를 위한 것은 없군요. 당신은 재물을 모아서 아들에게 준다고 하지만, 재물을 모아 도적에게 주고, 불에게 주고, 원수에게 주는 게 아닐지 어찌 알겠습니까? 당신이 탐욕과 인색함으로 조금씩 모은 것을 당신의 아들이 방탕과 음란함으로 홀연 흩어버리는 건 아닐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이 아들을 사랑한다면 덕을 물려주십시오. 재물과 복은 아울러 따라갈 것입니다. 재물을 물려주면 덕과 재물이 모두 위험해지지요. 재물이라는 것은 온갖 죄악이 담기는 그릇입니다. 어린 아들이 많은 재물을 끼고 있는 것은 마치 미친 사내가 예리한 칼을 지닌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남을 해치는 것을 모두 면치 못할 것입니다.”<238쪽>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한 사람에게 성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은 착하지 않으면 악하다. 지극히 바보가 아니라면 누가 착한 사람에게 화를 내겠는가? 악한 사람에게도 또한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악한 것은 몸이 병든 것이나 한가지다. 몸이 아픈 사람은 함께 불쌍히 여겨야 한다. 마음이 악한 사람은 그 병이 더욱 무겁고 위태로우니 특히나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이 세네카를 비방하자, 다른 사람이 이를 알려주었다. 세네카가 대답했다. “만약 제정신으로 나를 헐뜯었다면 내가 혹 화가 나겠지만, 단지 마음이 병들어서 나를 헐뜯은 것이라면 성을 내서 무엇 하겠는가?”<285~286쪽>
[정리=전진호 기자]
『칠극』
판토하 지음 | 정민 옮김 | 김영사 펴냄 | 700쪽 | 3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