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파봤니?”… 나 힘들다
“너 아파봤니?”… 나 힘들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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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거나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 우리는 쉽게 “암에 걸릴 것 같다”는 말을 내뱉는다. 우리가 농담처럼 내뱉은 그 말을 암 환자나 그 가족들이 듣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은 ‘암’이라는 단어 자체가 농담으로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의료인류학연구회에서 기획한 책 『아프면 보이는 것들』(후마니타스) 역시 “아파 본 사람은 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의료인류학연구회는 의료인류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2014년에 시작된 학회다. 8년째 매월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 현재 인류학·사회학·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 관련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책은 의료인류학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열세 명의 필자들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그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불평등의 모습을 지면 위로 길어 올린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픔이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여러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에 의한 아픔이다.

필자들은 “아픔을 이해하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기 위해 반드시 아파 볼 필요는 없겠지만, 아파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오해는 제법 깊을 수 있다”며 “이 책은 바로 그 오해의 폭을 좁혀 보고자 하는 인류학 연구자 열세 명의 노력을 담아낸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들은 구체적인 개별 사례부터 아픔의 구조가 드러내는 거시적 문제까지 두루 살핀다.

주목할 만한 챕터는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쓴 ‘감염의 윤리’에 관한 부분이다. 2016년 ‘한국 HIV/AIDS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102명의 감염인 응답자 가운데 64.4%가 죄책감을 느끼며, 50%가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을 느낀다. 같은 질문에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감염인은 각각 31.2%, 14.5% 만이 수치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게 서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 사회는 AIDS를 오염과 타락의 상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으며, 이는 결국 긴 시간 동안 HIV에 감염된 사람들이 질병 그 자체의 기전이 아닌,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불필요한 외부 효과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게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특정 집단 및 지역을 혐오하는 것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서 교수는 “감염 가능성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든 혹은 무엇이든 경험하는 공통적 조건이며, 이는 보건과 의학의 문제이자, 생의 윤리적 조건이다. 전하고 전해지는 존재로서 우리 모두의 삶이 언제나 서로의 영향 속에 있다는 감염의 윤리성을 우리는 너무 오래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

이어 “감염인의 자리는 누군가의 자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자리”라며 “두려움에 휩싸여 그 자리에 모욕과 절망을 가두기보다 진실과 긍정으로 그 자리의 불예측성을 살아 내는 힘이 더욱 절실해지는 때”라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책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부모 피해자들의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의료화된 난임의 경험, 조선족 간병사들의 이야기 등 의학 너머의 아픔을 다각적으로 접근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의학이 포괄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다양한 국면의 ‘아픔’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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