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퀴어한 예술가의 무거운 농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어느 퀴어한 예술가의 무거운 농담…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8.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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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구자 김경태는 2018년에 발표한 논문 「<박서방>과 <마부>의 가부장적 나르시시즘과 부자 로맨스 연구」에서 영화감독 강대진이 연출한 <박서방>(1960)과 <마부>(1961)를 퀴어적으로 독해한다. 그는 논문에서 영화학자 알렉산더 도티의 말을 인용하며 “어떤 텍스트라도 잠재적으로 항상 이미(always already) 퀴어적”이라고 주장한다. 수용자의 정체성과 상황, 텍스트의 효용 등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그는 도티의 주장을 근거로 퀴어와 무관한 두 영화를 퀴어영화의 계보에 위치시킨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인터섹스(intersex), 무성애자(asexual)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하지만 퀴어라는 단어 자체는 ‘이상한’ ‘색다른’ 등을 뜻한다. 성소수자들은 이 뜻을 전용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어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이상함’과 ‘색다름’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도티의 논의처럼 모든 영화가 퀴어영화라면, 모든 인간 역시 퀴어인 셈이다.

[사진=문학동네]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문학동네)의 저자 이반지하(본명 김소윤) 역시 “세상 모든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퀴어’하다”고 역설한다. 이반지하는 2004년 활동을 시작한 퀴어 예술가이다. 이제껏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으로서 퀴어 정체성에 관한 생각을 미술, 영화, 노래 등으로 표현해왔다. 그는 지난 3월 한국 최초의 퀴어가족 시트콤인 ‘으랏파파’(유튜브)의 각본을 썼다. 이반지하는 ‘이반’인 그의 성정체성과 ‘반지하’에 거주하는 자신의 주거 상황을 결합한 이름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미디어에 등장한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 저 정도 상황이면 죽고 싶겠다’라고 생각하면, 별안간 그 사람이 정말로 죽은 채 떠올랐다. ‘죽을 만큼 괴롭겠다’ 혹은 ‘힘들겠다’느 생각이 들면, 며칠 혹은 몇 달 후, 그는 정말로 죽음이 되어버리곤 했다. ‘어, 맞아’라고 답하듯 곧 맥없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70쪽>

책에서 이반지하는 자신을 ‘생존자’로 규정한다. 이는 성소수자들의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1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바이든 신행정부의 주요 정책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시도율(attempt suicide)은 비성소수자 청소년보다 다섯 배나 높다. 국내에는 성소수자들의 자살과 관련한 통계조차 없다. 달리 말하면, 퀴어들은 자살률조차 수치화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반지하는 자신의 존재를 놓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이 책에는 나 자신이 되기를 갈구하는 어느 퀴어한 예술가의 무거운 농담이 담겼다. 퀴어이자 예술가로, 유머리스트이자 폭력과 차별의 생존자로 견디고 버틴 그는 “나는 마음대로 살 거다. 그게 포인트다. 그냥 끝까지 재밌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재밌게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이 책은 우울하지만 유쾌한 일화로 넘쳐난다.

가령 코로나 펜데믹으로 집에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이반지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침대에 몸을 던지고, 영상을 작업하면서 빨래를 돌린다. 글을 쓰다가는 화장실에 가서 돌연 미친 듯이 타일을 닦는다. 벽에 붙여놓은 그림에 계란후라이 기름이 튀는 건 애교다. 그럴 때마다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공간에서 ‘예술을 하고자 한 죄’로 눈물을 뚝뚝 흘리지만, 비운의 예술가성에 잔뜩 취하기도 하는 사랑스러운 예술가다.

이 책에 대해 오혜진 문학평론가는 “온갖 장르와 매체와 기법을 우습다는 듯 갖고 노는 이반지하의 유일무이한 예술론”이라며 “세계는 이반지하에 의해 좀 더 적극적으로 ‘오염’돼야 한다”고 평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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