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독서인권] 애널리스트 겸 작가 신순규 “장애는 ‘인간 승리의 주제’가 아니다”
[특별기획-독서인권] 애널리스트 겸 작가 신순규 “장애는 ‘인간 승리의 주제’가 아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8.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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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장애인, 독서인권을 말하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입니다. 지적 격차가 삶의 격차로 이어지고 교육을 매개로 한 계층 대물림이 공고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는 삶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독서 소외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독서 접근성은 비장애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독서신문>은 국내 언론 최초로 장애인의 독서인권 문제를 취재해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시각·청각·발달장애인들의 독서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법적·제도적 미비점은 무엇인지를 점검합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김예지(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 의원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부탁합니다.

- 6년 만에 세 에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 출간
- “장애인은 자연스러운 존재, 어울려야 다름과 배려 알 수 있어”
- “투자는 도박 아냐. 일확천금 겨냥한 접근은 옳지 않아”
- “문학은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 독서는 평화 안겨줘”

‘하버드·MIT 출신 시각장애인’ ‘월가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 신순규를 소개할 때 붙는 수식들이다. 이러한 타이틀에는 그가 시각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도 이루기 힘든 성취를 거뒀다는 함의가 내포되어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은근한 차별의 시선이 깔린 표현이다. “본인이 어떻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별다른 수식 없이, 그저 작가로 불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가 신순규가 최근 책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을 펴냈다. 시각장애인으로 45년, 외국인으로 39년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책의 키워드는 ‘견고함’이다. 삶의 견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 사랑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하는 신순규.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는 이번 책에서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연한 기회로 열다섯 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난 신순규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조직학을 공부했다. <독서신문>은 장애인 독서권에 관한 미국의 선진화된 교육 환경 등을 알아보기 위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7월, 책 홍보를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에 머무르던 신순규를 <독서신문> 양재동 사옥에서 만났다.

- 6년 전에 펴낸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이후 두 번째 에세이다. 두 책 모두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등으로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만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꺼낸 키워드가 ‘견고함’이다. 처음 쓴 책이 남들과 삶이 조금 달랐던 사람이 살아온 과정의 내용이라면, 이번 책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면 우리의 삶은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열다섯 살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던 중 열세 살에 미국으로 기금 마련 공연을 떠났는데, 그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오버브룩맹학교에서 공연을 했었다. 남성 4중창단 반주를 포함하여 독주를 했다. 그 모습을 거기 있는 교장 선생님이 눈여겨보셨다. 마침 학교에서 개발도상국에 있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유치하여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나를 추천해주셨다. 학비가 엄청났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신순규 작가 [사진=안경선 PD]

- 한국과 미국의 교육을 모두 경험했다. 두 나라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한국에서 초·중학교를 다닐 때, 한국의 특수교육 제도는 굉장히 열악했다.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쓰는 교과서를 똑같이 쓰고, 같은 내용을 공부했다.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IEP(Individual Education Plans·개인교육계획)라고 해서, 학생들의 개인적인 특성이 맞는 맞춤형 교육에 주안점을 뒀다. 그건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시력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스킬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이나 관련 학습 자료가 많았다. 최근에는 한국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장애가 있어도 일반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나 정책적인 토양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없을까.

“관련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내 아이는 무조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낼 거야’라고 생각하면 위험이 크다. 그렇게 시작하면 결국 부모와 아이 모두 힘든 상황에 처한다. 점자도 모르는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면,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없다. 내가 부모님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하는 얘기인데, 특수학교를 1~2년 보내서 점자를 익히게 하고, 시각장애인이 컴퓨터 등을 다룰 때 필요한 여러 기술을 습득한 후에 일반학교에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수교육을 시키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일반학교에 보내는 게 좋다.”

- 오히려 일반학교에 갔을 때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겪진 않을까.

“제도나 법의 정착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에 걸맞은 태도의 변화, 인식의 개선 역시 중요하다. 그건 비장애인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가진 학생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 ‘나와 다른 아이도 있구나’ ‘내가 조금 배려를 해야겠다’ ‘저 아이와 같이 공부하면서 내가 어떤 걸 배울 수 있구나’ 등이다. 현재 미국은 그런 인식이 서서히 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부모들이 많다.”

- 태도의 변화나 인식 개선에도 여려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애인들이 일상적인 공간에 머무르면서 스쳐 지나가는 역할로 많이 등장해야 한다. 이건 내가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다. 장애인을 인간 승리의 주제로 거창하게 소비하지 말고,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삶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주인공이 무심코 방문한 빵집 가게의 사장이 장애인일 수도 있고, 우연히 들른 은행의 직원이 장애인일 수도 있다. 그런 이미지가 자주 노출되면, 대중들이 장애인을 더욱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점자 단말기를 사용하는 신순규 작가 [사진=안경선 PD]

- 책을 두 권 냈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나.

“대학 시절,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훌륭한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거니까. 동시에 ‘그런 공부는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공부해서는 직업을 못 가질 것 같았다. (웃음) 현재 내 본업은 애널리스트이고, 부업이 작가이다. 하지만 부업이 인생에서 더 의미가 있다.

- 어떤 작가들을 좋아하나.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 마크 트웨인 작품도 즐겨 읽는다.”

- 마크 트웨인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허클베리’보다 그와 동행했던 흑인 노예 ‘짐’을 더 좋아한다. 자유와 해방을 염원했던 짐의 생각과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커서 다시 읽은 뒤에 깨달았다. 문학의 가치가 바로 거기에 있다. 훌륭한 문학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준다.”

- 독서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는 점자로 읽었다. 지금은 거의 오디오북을 이용한다. 미국은 오디오북이 굉장히 보편화됐다. 웬만한 책은 오디오북과 함께 출간된다.”

-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MIT에서는 경영학과 조직학을 공부했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는 분야였나.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이 의사가 되는 경우는 정신과 의사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가 의사의 꿈이 좌절되면서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심리학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조직학이 있다. 그걸 대학원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때가 90년대 초였다. 그즈음에 미국에 장애인법이 새롭게 통과됐다. 바로 미국 장애 복지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이다. 고용주가 취업 등 업무와 관련해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안이었다. 막 시행된 법이라 판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조직학의 관점에서 장애인이 응시했을 때, 고용주가 어떤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 그러다가 애널리스트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를 위해 여러 기업에 접근했다. 내가 평소 투자에도 관심이 많아서 월가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쌓았고, 실제로 일하면서 연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시에 일과 연구를 병행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았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괜찮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인턴 과정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다가 완전히 정착하게 됐다. (웃음) 이론보다는 실무가 더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사진=안경선 PD]

- 평소 장애인의 교육권 등 관련 사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미국은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 자체는 잘 정비되어 있다. 가령 당사자가 배움의 의지만 있다면 교육 기관에서 점자 도서나 단말기 등을 부족함 없이 지원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이 직업으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한국은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안마 일을 하는 것처럼 특정 장애인들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그 외에는 교사나 사회복지사, 목사 등으로 나뉜다. 미국은 한국처럼 그렇게 직업이 획일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보다 실업률이 높다. 한국은 선택은 좁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미국은 선택은 넓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교육과 직업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될 수 있으면 한다 ”

- 한국과 미국 도서관의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처럼 미국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다. 결국은 그러한 도서관이 내 생활권 안에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문제로 수렴한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고, 그런 도서관이 동네마다 있는 게 아니라서 직접 다니지는 못한다. 과거에는 주로 도서관과 우편으로 연락하면서 오디오북과 관련한 CD나 테이프를 많이 받았다. 동네에 있는 일반도서관의 경우 내가 시각장애인으로서 이곳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있고, 불편함을 구체적으로 도서관에 이야기하면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이나 스크린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면 빠르게 설치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해주고 싶은데, 관련 정책이 없거나 예산이 부족해서 힘들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장애인의 독서권(혹은 교육권)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독서권과는 조금 다른 얘기인데, 한국에는 안내견과 관련한 제도나 법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김예지 의원의 안내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가령 안내견을 데리고 식당이나 도서관을 입장하거나 택시를 탈 수 있도록 하는 법이 통과했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그곳의 주인들이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을 환대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장애인의 존재를 사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 한국은 현재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 붐이 일고 있다. 빛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로서 해당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염려스럽다. 동시에 거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기본적으로 투자라는 건 산업의 미래를 보고 장기간에 걸쳐 자금을 묶어 놓는 행위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주식 가치가 상승하면 주주로서 이득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을 하듯이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접근하는 건 옳지 않다.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위험하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유튜브, 팟캐스트 등 즐길 거리도 넘쳐난다. 특히 유튜브는 끝이 없다. (웃음) 한번 클릭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독서는 아니다. 시작과 끝이 있다. 엔딩이 있는 콘텐츠다. 독서를 통해 세상의 시끄러움을 잠재우고, 내면의 평온을 찾았으면 좋겠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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