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의 책과 경제] “새벽은 와도 삶은 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최선집의 『정경환란』
[박용채의 책과 경제] “새벽은 와도 삶은 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최선집의 『정경환란』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7.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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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소속의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22, 24대 대통령을 지냈다. 4년 임기를 마친 뒤 선거에서 패하고 4년 뒤 재도전해 대통령이 됐다. 1893년 두 번째 임기를 전후해 미국의 경제 사정은 최악이었다. 철도회사를 비롯해 거대기업과 은행들이 파산하고, 주식시장은 투매로 패닉상태에 빠진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미국은 금과 은을 동시에 화폐로 사용하던 금·은 본위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위기가 통화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확신한다. 은의 의무 구매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금본위제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더 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더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위기는 알래스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다량의 금의 유입된 수년 뒤에야 겨우 끝난다.

경제 문제의 원인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몸에 열이 날 경우 그 열이 어떤 병 때문에 일어난 지를 특정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원인 진단이 잘못될 경우 해법은 산으로 가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 된다. 느닷없이 130년 전의 미국 얘기를 꺼낸 것은 경제정책이란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공약을 발표한 이도 있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풍요로운 경제연구소’의 최선집 소장의 ‘정경환란(政經患亂)’(홍익기획)은 흥미롭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환란은 근심과 재앙을 통틀어 말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 사회의 정치와 경제가 걱정스럽다는 뜻이다.

최 소장은 행시·사시에 합격한 뒤 재무부에서 13년간 근무했다. 국세청, 기획재정부, 감사원, 법제처 등에서 법률고문 및 각종 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재정정책 전문가와 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시행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기본적으로 기업과 기업인의 가치,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적 경제철학을 갖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소득주도 성장’ 등 현 정부를 비롯해 진보진영이 추구해온 경제철학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일독하는 것은 나쁠 게 없다.

책은 김영삼 정부를 시작으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한다. 알려진 대로 금융기관과 거래를 하는 데 있어 가명이나 차명이 아닌 본인 실명으로 거래하는 제도이다. 실명제를 실시한 목적은 부정한 자금 통로 차단과 세수 확보였다. 하지만 실명제 실시 뒤 특정 채권 소지인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 및 세금부과 면제 조항이 들어감으로써 과세 불공정 시정이라는 당초 목표는 사라졌다. 지금도 삼성은 물론 코오롱, 태광, 신세계, 부영 그룹 오너들의 차명주식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때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역시 신용카드 도입에 앞서 직불카드나 현금영수증 제도를 먼저 고려했다면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가맹점 수수료’ 문제가 최소화됐을 것으로 그는 진단한다.

경제 대통령을 외치며 당선된 이명박 정권의 경우 신성장동력 산업은 기존의 산업 정책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성장동력 발굴이라는 고무적인 제목에 현혹됐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의 판로지원을 위한 중고 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 역시 아랫돌 빼 윗돌 괘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얘기한 경제민주화는 개념이 어설픈 제도이며 투자유도를 위한 사내 유보금 과세 역시 반기업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비판은 혹독하다. 특히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부동산 문제에 대한 두 대통령의 인식이 거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시장 문제를 다주택 소유자의 투기 수요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가수요 억제 정책을 쓴 게 오늘의 폭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진단이 잘못된 상황에서 정치적 이념까지 개입하면서 정책이 왜곡됐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역대 정부는 빈부격차나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약자의 더 나은 삶을 약속해왔다.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미래를 얘기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정책집행자의 의도는 선의일 것이다. 정책의 지향점 역시 시민과 사회를 위함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 별개로 정책을 시행하고 법률을 제·개정하기에 앞서 기대 효과에 대한 검토는 체계적이고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현실을 오판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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