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 칼럼] 자화자찬이거나 정신승리이거나
[박용채 칼럼] 자화자찬이거나 정신승리이거나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7.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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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채 편집주간
박용채 편집주간

2015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시간』이란 회고록을 냈다. 그는 회고록에서 “4대강 사업은 한국이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4대강을 방치하는 것은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십조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환경파괴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자뻑이 따로 없다. ‘사실에 근거할 것, 솔직할 것, 후대에 참고가 될 것’이라는 회고록 집필 원칙이 무색할 지경이다. 박근혜 정부는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에 대해 “역대 정부가 포기했던 문제를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해결했다”고 말했다. 기막힌 자가당착이다.

역대 정부 얘기를 불쑥 꺼내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자화자찬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장 청해 부대원의 코로나 집단감염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이) 누구도 생각 못했던 비행기 2대를 보내서 후송을 했다. 공중급유기 급파를 지시하셨다”(청와대 소통수석), “최단기간에 임무를 달성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 의무후송 사례”(국방부)라는 설명은 말문을 멎게 한다.

장병들을 이역 땅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한 군의 허술한 대처능력과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에 대한 자성은커녕 ‘너무도 당연한’ 후송을 공치사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팬데믹의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방역 강화에 나서야 할 때마다 거꾸로 K-방역을 자랑하며 코로나 종식 분위기를 띄웠던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시장 점검 회의에서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주거 안정성이 높아졌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함을 느낀다. 치솟은 전셋값,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 등 임대차 3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억지스런 모습에 헛웃음만 나온다. 자고 나면 뛰는 아파트값 폭등에도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엉뚱한 수치를 들이대며 폭등은 없다고 강변한 것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부동산을 어떻게 건드리면 이렇게 망가지나요”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나가달라고 하는데 2년 전 전세금으로는 갈아탈 수가 없어요” “1년 반 전 이사 올 때 매매가가 지금의 전셋값이 됐어요. 진심으로 문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시민들의 아우성을 듣고나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자아도취’라 해야 할지 ‘정신승리’라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자아도취이든 정신승리이든 밑바닥에는 시민과의 괴리가 깔려있다.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으로 왜곡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룬 구범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열하의 칠순 만수절(생일)과 건륭의 제국』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건륭제는 고희연에서 고희의 복을 얻은 여섯 황제라 해도 원 세조와 명 태조는 창업의 군주로 예악정형(禮樂政刑)에 겨를이 없었고, 나머지 네 황제는 내가 본받을만 하지 못하니 그 시대와 정치 또한 오늘날만 하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고래로 드문 일(古稀)’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흔히 자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시대로 ‘강옹건성세(康雍乾盛世) 134년을 꼽는다. 강옹건은 청나라 4, 5, 6대 황제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건륭제는 서역과 티베트 몽골까지 영토를 넓히는 등 청의 황금기를 구가한 인물이다. 공전의 성세를 일군 만큼 치세를 고희하다고 허세를 부려도 면박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런 건륭제조차도 말년에는 잦은 대외원정과 관료들의 부패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면서 훗날 청 멸망의 단초가 된다. 권력은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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