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끝내면 사랑을 나눈 뒤의 공허함이…”,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글을 끝내면 사랑을 나눈 뒤의 공허함이…”,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 황현탁
  • 승인 2021.07.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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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⑱]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⑰ 유길준의 『서유견문』, "파리의 청초·화려함은 런던·뉴욕에 비해…"
⑯ “여행이 끝나지 않길 바랄 때도 있지만, 멈출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⑮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⑭ “명석한 사람은 많아도, 너그러운 사람은 적다”... 신유한의 『해유록』
⑬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가 1921년부터 1926년까지 파리의 생활을 회고하며 쓴 글 19편을 모은 책이다. 출간은 그의 사후인 1964년에 이뤄졌다. 2010년에는 미발표원고 10편을 추가해 증보판을 펴냈다. 한국어번역판의 1부는 초간본에 수록된 글이고, 2부는 2010년에 추가한 내용이다.

헤밍웨이는 1918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적십자사 구급차 운전요원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부상을 입는다.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귀국한 그는 시카고에서 집필활동을 하다가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차드슨을 만나 결혼한다. 1921년 12월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위해 <토론토 데일리 스타> 통신원이 되어 파리에 도착한다.

그는 노트르담 데상 거리의 제재소 위층 아파트에 살았다. 그는 이곳을 ‘가난한 동네이지만 정겨운 곳’으로 표현했다. 헤밍웨이는 가난한 사람도 잘 지낼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는 도시에서 새로운 작품 세계를 마음껏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보물을 선물받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파리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알거나 만났던 모든 지인의 경험과 지식을 자신의 글에 활용한다.

헤밍웨이는 ‘동네 술꾼들이 모여드는 지저분하고 허름한 카페를 찾거나, 생미셸 광장의 멋진 카페에서 카페오레를 주문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럼주를 주문해 마시면서 글을 쓰고는 했다. 때로는 창가의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서 “그대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신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든, 내가 당신을 다시 못 본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당신은 내 것이고, 파리도 내 것이고, 나는 이 공책과 연필의 것입니다.”라는 생각에 젖는다. 글을 끝내고 나면 마치 사랑을 나누고 난 것처럼 공허하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고 한다.

그는 파리에 살면서 거트루드 스타인, 실비아 비치,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포드 매독스 포드, 스콧 피츠제럴드 등 저명 작가나 출판인들과 어울리면서 작가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한다. 스타인 여사가 헤밍웨이의 글을 보고는 “전시할 수 없는 그림과 같은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였는데,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헤밍웨이는 글쓰기를 멈추면 쓰고 있는 글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거나 원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데 치중했다. 거의 매일 오후에는 뤽상부르공원으로 가 박물관에서 세잔, 마네,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봤다.

헤밍웨이는 비치가 운영하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란 대여서점에서 영어로 번역된 투르게네프,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빌려 읽기도 했으며, 센 강변의 노점 책방에서 미국 중고책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글 한 편을 완성했을 때,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할 때, 센 강변을 거닐거나 낚시질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센 강에서는 ‘모샘치’란 물고기가 많이 잡혔으며, 튀긴 모샘치를 몇 접시 먹기도 하였다.

헤밍웨이는 경마신문을 사 경주마 정보를 읽고 아내와 함께 경마장에 가 베팅을 해 배당금을 받기도 하였으며, 쪼들리는 형편임에도 값싼 음식과 술로 해결하고 서로 사랑했다. 경마장(오퇴이유, 엥기엥 두 곳)에서 행운을 잡는 날에는 제임스 조이스가 가족들과 식사하는 비싼 레스토랑에 간 적도 있다. “경마는 요구가 많은 친구처럼 오랜 세월 그들 곁에 있었으며,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구실로 가장 부질없었지만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며 고약하고 까다로움에도 너그러웠다. 얼마간 지난 후 시간도 뺏기고 너무 빠져 경마를 포기하고 돈을 걸지 않는 경륜에 취미를 붙였다.”고 술회한다.

“파리는 오래된 도시였고,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가 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빵이 그득하고 거리 테라스에는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서 늘 먹는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단골 카페를 정해놓고 그곳에서는 절대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 그 카페 주소로 우편물을 받기도 했다.

헤밍웨이가 특파원을 그만두고 로잔에서 집필활동을 할 때 아내가 그동안의 원고를 가져오다 리옹에서 가방을 도둑맞아 다 잃어버리고, 스타인 여사가 ‘전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글’이라고 생각되는 글만 남아 있었다. 그는 초기 작품을 잃어버린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였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가장 좋은 카페 중 하나이고 집에서 가까운 ‘라라클로즈리 데릴라’라는 카페를 자주 이용하였는데, 시인들의 모임 장소였다. 그곳에는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한나절을 앉아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그는 거기서 현대소설 100선에 드는 『선량한 군인』의 작가인 포드 메독스 포드를 만났는데, 포드는 좋은 작가이고 집안문제를 겪은 불쌍한 사람임을 다른 작가에게 들었다. 포드는 지나가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자신에게 “젊은 작가가 브랜디를 마시기 시작하면 치명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헤밍웨이는 ‘글 쓸 때는 눈먼 돼지가 될’ 정도로 몰두하여, 지인들은 방해하지 않으려 지나치기도 한다. 그는 형편이 궁색하여 점심 초대받은 것처럼 하고 외출하여 산책하다 돌아와 멋진 식사를 했다고 아내에게 거짓말까지 한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 마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소설 주인공들은 식욕이 강하거나 미식가이거나, 혹은 식탐이 있거나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온종일 포즈를 취하느라 고단했던 모델들, 어두워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 온 화가들, 창작하느라 온종일 애쓴 작가들, 술꾼이나 괴짜들이 애용하는 ‘카페 돔’을 지나치기도 하였다.

헤밍웨이는 파리에 살면서 겨울이면 부인, 어린 아들과 함께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산악지방으로 스키여행을 즐겼다. 도박이 금지된 오스트리아에서 경찰서장, 지역유지들과 심심풀이 포커판을 벌이기도 했으며,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의 습작을 쓰기도 했다. 여행 중 아내는 양털로 모자, 스웨터, 숄 뜨개질도 했다.

그는 어느 해부터 아내 외에 <보그>편집자이던 폴린 파이퍼와 양다리 걸치기를 하여 부부사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스스로 ‘사악한 모든 일은 천진난만함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 나는 어느 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그 상황을 증오했으며, 상황은 위험해져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쓰고 있다.(『파일럿 피시와 부자들』) 다음해 그는 결국 해들리와 이혼하고 폴린과 재혼한다. (헤밍웨이는 1940년에는 에스파냐 내전 종군특파원이었던 마사 겔혼과 사랑에 빠져 폴린과 헤어지고 마사와 결혼한뒤 쿠바로 건너간다. 1944년 마사가 종군특파원으로 유럽으로 떠나자 1946년 메리 웰시와 결혼한다. 그는 1961년 아이다호에서 자살한다.)

그는 스콧 피츠제럴드로부터 열차로 리용으로 가 그의 승용차로 파리로 귀환하자는 제의를 받고, 수락한다. 출발시간에 피츠제럴드가 나타나지 않아 혼자 리용으로 간 뒤 리용에서 그를 만나 정비공장으로 가니 ‘지붕이 없는 차’였다. 비가 내려 피하기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돌아오다 저물어 호텔에 투숙한다. 피츠제럴드가 폐렴기가 있다고 하여 밤중에 체온계를 구하고 약을 사다주는 홍역까지 치른다. 다른 축제에 사용하려고 저축해 둔 비상금으로 열차비와 약값까지 써가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함께 여행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헤밍웨이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글을 고쳐 쓰는 작가이다. 헤밍웨이는 이를 ‘창녀 같은 짓거리’라고 여겨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형식에 끼워 맞추려 기교를 부리지 말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을 쓰라’는 충고를 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형 카페에서도 어느 때부터인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고객들이 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누군가 100년 전 파리의 모습들을 본뜬 것이 시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얘기이지만. 한국에서 카페 실외에서 식사하는 것은 날씨와 매연 때문에 어렵겠지만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정겹기도 하다.

나는 37년 전 아내와 함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콩코드광장 등 프랑스를 다녀왔고, 21년 전에도 여행한 적이 있으나 오래전 일이라 거의 기억이 없다. 언젠가 다시 다녀 올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공부하는 여행‘보다는 '즐기는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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