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
⑮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⑭ “명석한 사람은 많아도, 너그러운 사람은 적다”... 신유한의 『해유록』
⑬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스위스 베른의 김나지움(중등학교)에서 그리스어 등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인 그레고리우스는 비 오는 날 출근 도중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포르투갈 여성을 구한다. 그녀는 학교까지 따라와 비를 피한 후 떠난다. 실수와 오차를 용인 않는 철두철미한 삶을 살아온 57세의 그레고리우스는 ‘처음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도망가려 결심한다. 수업뒤 에스파냐 서점으로 가 포르투갈 작가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고른다. 의사로 살라자르 독재정권 저항운동에 참가하였던 저자 프라두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 교장에게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거의 끝나 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내고 돌아올지 확실치 않은 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는 로잔, 제네바, 리옹을 거쳐 파리에서 스페인을 지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살라자르가 총리로 장기집권(1932~1968)한 시기로,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주민을 탄압하다가 1970년 사망하고,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체제가 완전 붕괴되기 전까지다.
주요 등장인물은 척추경직증을 앓으면서 ‘부당한 정권에 저항하지 않고 계속 관직에 머무름을 자책하고 자살’한 판사 알렉산드라 프라두, 아버지의 치료와 어머니의 소원으로 의사가 된 아마데우 드 프라두, 프라두의 김나지움 친구이자 연적인 약사 조르지, 프라두가 믿은 단 한명의 여자로 ‘지순하고 손을 대지 않았던 사랑’인 마리아 주앙(프라두는 그녀를 자신의 사유세계의 주민으로 만들고 그 세계에는 두 사람만 있다). 우체국 직원으로 야학을 빙자한 체제저항단체의 간사역을 했던 에스테파니아(조르지의 애인으로 비밀탄로방지를 위해 살해하려 하자 프라두가 스페인 살라망카로 도피시킴),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도자기 사업을 하는 포르투갈인 실우베이라, 리스본의 안과의사 마리아나 에사와 그녀의 삼촌으로 저항운동 뒤 고문후유증으로 요양원에 있는 에사 주앙, 열아홉 살 때 음식을 잘못 삼켜 오빠 프라두가 윤상갑상연골절제술로 살려내 생명의 은인으로 헌신하는 여동생 아드리아나 등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열차 여행 중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비아리츠에서 실우베이라를 만난다. 그는 리스본 호텔을 예약해주며, 그레고리우스의 깨어진 근시 안경을 고칠 안과의사 마리아나 에사도 소개해준다. 그레고리우스는 나중에 그의 집에서 기거하며, 프라두가 다녔던 폐교가 된 중등학교도 함께 방문한다. 에사로부터는 삼촌 주앙 에사를 소개받고 프라두의 중고 책을 판매한 책방 주인을 알아내는데 도움을 받는다.
그레고리우스는 책방주인으로부터 주민들로부터 칭송받던 의사 프라두가 ‘의사’로서 독재정권의 앞잡이 비밀경찰인 ‘리스본의 인간백정’ 멩지스의 생명을 구해준 사실을 듣는다. 멩지스는 저항운동을 하는 프라두를 숨어서 지켜주고, 투옥된 주앙 에사 면회도 허용한다. 인간 백정을 살려준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과 환자 가족들은 프라두에게 토마토를 던지고 침을 뱉는 등 신의 사자에서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경멸에서 오는 외로움을 느끼며,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 사망 후 그가 운영하던 푸른 병원을 오빠의 ‘성전이자 제단’으로 보존하고 있는 여동생 아드리아나를 만나, 오빠와 함께 저항운동을 하였던 조르지와 저항운동 간사 에스테파니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듣는다. 그레고리우스는 또 다른 여동생 티나를 만나 언니, 올케, 마리아 주앙 등과 오빠와의 사이에 관한 얘기, 프라두의 중등학교시절 신부로부터는 그가 졸업식 연설에서 독재 정부를 규탄하는 ‘역사라는 배에 탄 대담무쌍한 모험가’라는 얘기를 듣고 프라두 장례식 미사도 집전했음을 알게 된다.
프라두는 중등학교 졸업식에서 “우리 몸과 독자적인 생각에 악마의 낙인을 찍고 우리의 경험 가운데 최고의 것들을 죄로 낙인찍는 세상, 우리에게 독재자와 압제자의 자객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세상,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도, 그들이 고양이나 비겁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거리로 숨어들어 번쩍이는 칼날로 등 뒤에서 희생자의 가슴까지 꿰뚫어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필요하다면 무기까지도 들고 독재자에게 대항하여 일어나야 할 힘을 얻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 용기와 자신감을 빼앗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한다.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다”란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가 믿는 유일한 여자인 마리아 주앙으로부터는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를 보아 온 프라두는 영혼의 짐을 져야 할 아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작은 아이의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 결혼 전에 정관수술을 했으며, 이 사실은 아내 파치마는 모른다.”는 것을 듣는다. 프라두는 그녀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녀는 간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한 사람은 자기가 구한 사람과 가볍고도 빠른 작별을 해야” 하는데, 프라두는 누이를 병원에 두어, 광적으로 감사하고, 노예와도 같은 굴욕적인 태도를 보여 오빠인 그가 구역질을 느낄 정도였다고 밝힌다.
프라두는 “사랑에는 욕망과 만족과 편안함 밖에 없다. 모두가 헛된 것이고 언젠가는 결국 부서지는 것인 만큼 ‘신의’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저항운동 비밀 탄로 방지를 위해 에스테파니아를 살해하려하자 친구인 조르지와의 신의 때문에 포르투갈 탈주를 비밀스럽게 수행한다. 프라두는 에스테파니아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원했으며, 함께 스페인의 ‘세상의 끝’마을 피니스테레로 여행하던 중 브라질로 가자고 했을 때, 그녀가 ‘자신만의 여행, 자기 영혼의 억압된 분노를 향한 여행’이므로 동행할 수 없다 거절한다. 자존심이 상한 프라두는 그녀를 냉랭하게 대한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가 의학 공부를 하던 코임브라 강의실, 도서관, 살던 골목도 갔고 에스테파니아와 함께 갔을지도 모르는 피니스테레까지 방문한다. 그는 마리아 주앙이 프라두로부터 받은 아내 파치마에게 쓴 편지를 뜯지 않은 채로 받았으며, 여동생으로부터는 아버지가 아들 프라두에게 죽기 하루 전에 쓴 편지, 대학생 아들이 판사 아버지에게 쓴 편지, 프라두가 에스파냐 여행에서 돌아온 후 쓴 글, 다른 여동생 티나로부터는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는 프라두의 글을 받는다. 모두 상대에게 말하지 않았던, 못했던 진솔한 얘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저항운동의 역사를 저술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향을 밝힌다. 귀로에 에스테파니아가 근무하고 있는 스페인 살라망카에 내려 그녀를 만나 프라두와의 관계를 듣는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 여행에서 프라두의 행적을 추적한다는 여행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프라두는 “여행은 길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길 바랄 때도 있다.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 소중한 날들이다. 다른 날에는 기차가 영원히 멈추어 설 마지막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고 하는데, 그는 “난 터널을 좋아한다. 터널은 희망의 상징이다”라고 말한다. 마리아 주앙은 “프라두는 언제나 멀리 떠나려고, 자신에게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에 휩쓸려가고 싶은 열망에 몸을 떨었지요. 하지만 리스본을 떠나면 바로 향수병에 걸렸어요. 리스본은 보호벽이 가장 견고한 곳이어서 갑자기 여행을 중단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옛날 제자이던 플로렌스와 결혼하였으나 5년 만에 이혼하였고, 포르투갈 사업가 실우베이라 역시 이혼하고 혼자서 살고 있으며, 그레고리우스의 제자들도 ‘파트너’와 직업과 자녀가 있다는 설명에서처럼, 유럽에서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국과 다름을 소설에서 알 수 있다.
여행의 시발은 자살하려던 포르투갈 여자 때문이었고, 그녀가 적었던 전화번호도 갖고 있으면서도 여행 중 간간히 생각만 떠올릴 뿐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또 그레고리우스는 아내가 “체스는 그렇게 잘 두면서 왜 인생에서 싸울 줄은 몰라요?”라고 말하면, 그는 “인생에서 싸우는 건 웃기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싸울 일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라고 했듯이 “혹 유럽인들의 삶은 우리의 인생보다 더 여유로웠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나는 이 소설이 “배경은 유럽이지만 그곳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 남자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욕구를 분출할 아내 아닌 다른 여자가 필요하고, 친구와의 신의를 중시하고 있구나.”라는 보편적(?)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동보다는 사유와 관련된 내용이 많아 일반 소설보다는 읽는데 더 많은 주의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 체류기간 중 비행기로 취리히 공항을 이용 잠시 베른을 다녀가며, 스위스로의 귀로 여행 역시 완행열차를 이용한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의 프라두 행적 추적 여행에는 지하철, 열차, 렌트카를 이용한다. 주요 여행지와 경유지 지도를 작성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