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독서인권] 시각 장애인 독서생활기
[특별기획-독서인권] 시각 장애인 독서생활기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6.25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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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장애인, 독서인권을 말하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입니다. 지적 격차가 삶의 격차로 이어지고 교육을 매개로 한 계층 대물림이 공고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는 삶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독서 소외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독서 접근성은 비장애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독서신문>은 국내 언론 최초로 장애인의 독서인권 문제를 취재해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시각·청각·발달장애인들의 독서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법적·제도적 미비점은 무엇인지를 점검합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김예지(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 의원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부탁합니다.

저시력 장애 배희진씨의 도서관 탐방기 “깨알만한 글씨에 도서관 이용 힘들어”
전맹 한혜경씨의 전자책 활용기 “정부문서, 제목만 읽어준뒤 문서 끝”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지난 16일 서울 중랑상봉도서관 4층 종합자료실. 저시력 장애를 갖고있는 배희진(25)씨가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 방』의 대여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배씨에게 세상은 흐릿하게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얼굴은 분별할 수 있지만, 점이나 잡티 등 세세한 특징은 알아보기 힘든 정도다.

먼저 도서관에 비치된 PC에서 도서관 웹사이트에 접속한뒤 도서 검색 목록을 들여다봤다. 미간이 좁혀졌다. 저시력확대기를 이용해 화면 배율을 500% 확대한 상태에서 웹사이트를 훑어보았다. 검색결과는 중랑구 내 다른 도서관의 해당 도서 보유현황부터 먼저 보여줬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겠지만 큰 글씨를 한줄씩 눈으로 읽어가며 스크롤을 내려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과잉 친절’이었다. 몇 번의 작업 끝에 겨우 『외딴 방』을 찾아냈다. 책 위치 확인을 위해 용지를 출력했다. 손바닥만한 용지에는 ‘도서명’ ‘청구기호’ ‘등록번호’ ‘저자’ ‘자료실 위치’ 등이 적혀 있었다. 깨알만한 글씨는 읽기에 너무 작았다.

책 보관 위치를 제대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책장에 붙은 번호표 역시 작은 글씨로 되어있었다. 몇 차례 오고간 끝에 800번대 한국문학 류 책장을 찾아 훑었다. 번호표와 책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필요하면 한권씩 책을 빼 확인했다. 그는 “한 책장을 두 번씩 훑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책을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 정도. 비장애인이면 2~3분이면 끝나는 일이다. 그나마 이번에는 원하는 도서를 빠르게 찾는 편이었다고 했다.

배씨는 시각장애인 중 흔치 않게 오프라인 방식의 독서를 좋아하는 몇 안되는 독자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그의 친구들은 모바일 독서 어플리케이션 ‘소리책’으로 책 낭독을 듣거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한 도서를 읽는다고 했다. 그는 “전자 책으로 읽으면 진짜 책을 읽는 맛이 안 난다”며 “책의 냄새를 맡고 질감을 느끼면서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주거지 인근 도서관을 찾는 것은 월 평균 다섯 차례 정도이다. 한번 책을 읽으면 많게는 4시간 정도 정신없이 책에 집중한다. 몇 년전에는 청소년 수필을 많이 읽었지만, 요즘은 여행 관련 도서나 비건 레시피가 손에 잡힌다고 했다.

독서 활동 공간은 집이다. 그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집에 갖고와 저시력 확대기로 정독한다. 책을 저시력 확대기 판에 펼쳐놓으면 위에 달려 있는 카메라가 모니터에 큰글씨 화면으로 보여준다.

배씨가 독서 확대기를 통해 책을 읽는 모습
배씨가 독서 확대기를 통해 책을 읽는 모습. [사진=최현식 PD]

그가 도서관에서 독서 활동을 꺼리는 것은 장비가 마뜩잖은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서관은 시각 장애인의 독서를 돕기위한 장비나 배려가 미미하다. 농아인의 경우 전문 도서관조차 없다. 상봉도서관은 2019년에 설립된 최신 도서관으로 4만2,000여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지만 저시력 장애인을 위해 저시력 확대기 1대를 비치해놓은 게 전부이다. 그나마 비치돼 있는 저시력 확대기는 도서관마다 모델이 달라 조작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 저시력 확대기가 낡아서 책을 비춰주는 모니터 화면이 깨져서 나오면 더 난감해진다. 책을 찾기위해 도서관 사서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배씨는 “그분들도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드려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며 “직원분들이나 사서분들이 어떻게 장애인을 대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증 시각장애인 한혜경(25)씨는 1년에 80~100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앞을 볼 수 없는만큼 주로 오디오북 어플리케이션이나 PC의 스크린 리더(화면에 나타나는 텍스트를 읽어주는 낭독 프로그램)로 책을 듣는다. 주로 사용하는 독서 앱은 SK텔레콤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함께 만든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LG그룹의 ‘책 읽어주는 도서관’ 등이다. 한씨와 함께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을 이용해봤다.

한씨가 켠 독서 앱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텍스트를 자연스럽게 읽어나갔다. 기계음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성우가 녹음에 참여해서 담은 것”이라고 했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아이폰에 설치된 보이스오버(VoiceOver) 음성이 안드로이드폰보다 한결 자연스럽다고 했다.

한혜경(25)씨가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어플을 이용하는 모습. [사진=최현식 PD]

물론 오디오북 서비스에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씨와 함께 구글 'Play 북'의 오디오북 서비스 결제과정을 확인해봤다. 앱 선택 화면에서 독서 앱을 탭하니 화면이 나타났다. 조작은 간단해보였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클릭하고 ‘도서 구매하기’를 누르니 보이스오버가 ‘웹사이트에서 도서를 구매한 후 여기로 돌아와서 재미있게 즐기세요’라고 말했다. PC로 접속해 해당 웹사이트에 들어가 도서 구매를 해야 했다. 어떤 결제 방식에는 PC에 나타난 QR코드를 핸드폰 카메라로 읽게 해서 접속하라는 절차도 있었다. 전맹인 한씨의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는 “정기 구독이 아닌 책 한권을 일일이 대여해야 하는 서비스의 경우에는 불편감이 더하다”고 말했다.

책 내용(e-book)을 들려주는 방식도 핸드폰 음성(보이스오버)이 한 줄을 읽으면 사용자가 탭을 해서 다른 줄을 읽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텍스트를 자세히 읽게 하는 친절한 방식 같지만 점자를 읽고 일상에서는 사물을 감별하느라 손을 많이 쓰는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고난 그 자체였다. 그는 “화면을 손으로 넘겨서 책을 다 읽어내면 나중에는 손목과 엄지가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PC를 사용할 때는 스크린 리더로도 읽을 수 없는 이미지 기반의 PDF 파일 때문에도 고초를 겪는다. 그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기자에게 직접 자신의 노트북으로 보여줬다. 특정 PDF 파일을 골라 열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정당에 금액을 기탁한 내용을 공개한 1쪽짜리 문서였다. 기탁한 정당과 기탁 금액, 기탁 일시 등이 적혀 있었다.

파일명부터 문서 전체 내용을 쭉 읽어내려갈 것이라고 기대와는 달리 스크린 리더는 순식간에 음성 낭독을 마쳤다. “공고 제2021-72호 2021년도 1/4분기 기탁금 지급 공고 PDF 1페이지 문서 시작”…“문서 끝”. 한씨는 이 외에도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정부 전자 문서가 중증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힘든 상태로 다수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시대에 재난지원금 관련된 문서를 이미지 기반의 PDF로 올려주면 시각장애인들은 읽을 수가 없다”며 “시각 장애인이 국민으로서나 소비자로서 배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배씨와 한씨 두 사람 모두 책을 좋아하는 시민이다. 하지만 비시각장애인이 만든 온‧오프라인 독서 시스템은 이들의 독서 욕구와 정보접근성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시각장애인 독자의 욕구와 정보접근성 보장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낮은 장애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씨는 “장애인들이 책을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는 인프라가 매우 적다”며 “시스템을 설계하는 분들은 시각장애인이 독서를 못할 거라 으레 짐작하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문 = 배희진씨‧한혜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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