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내 인생은 스물일곱에 리셋이 되었다.” 27살의 나이에 남편을 따라 낯선 미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서 “나를 포장해주는 것들”은 미국에서 무용(無用)했고, “나를 화려하게 설명할 영어 실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초긴장 상태로 지내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는 날”들을 수없이 흘려보냈다. CJ,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 10개 글로벌 회사를 거쳐 현재 구글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살에게』(메이븐)의 저자 김은주씨 이야기다.
2남 1녀 중 막내로 별다른 기대를 받지 않았던 김은주씨는 어릴 적 미술 시간에 칭찬받았던 기억에 의지해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재수 끝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에 합격, 아버지를 졸라 400만원(당시 대학 한학기 등록금이 250만원)짜리 매킨토시 컴퓨터를 구입해 디자인에 천착했다. 일단 저지르는 스타일도 그의 이력에 큰 몫을 차지했다. 디자인 전문가가 드물던 시기 무턱대고 컴퓨터 그래픽 강사로 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수업에 들어갔다가 망신을 당”하는 악몽에 시달리며 두 달을 버텼다. 그러고 나니 “전지 훈련을 받고 온 프로선수처럼 실력이 단단해”졌다. 정답이라 단언하기 조심스럽지만 저자가 “저지르자. 일단 저지르면 수습할 힘이 생긴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포트폴리오를 인쇄물이 아닌 CD로 만”드는 당시로서는 참신한 시도로 디지틀조선일보 공채 1기에 합격한 후 20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CJ 디자인실로 이직한 그는 27세의 나이에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 이민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일리노이 공대 디자인 스쿨을 나와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미국 땅에서의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년 남짓 컨설팅 회사에도 근무했지만 몸에 맞는 옷이 아니었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직을 시도해 모토롤라에 도전해 합격, 3년간 일하며 레이저 폰의 성공을 함께했다. 이후 퀄컴에서는 앱 개발 플랫폼과 증강 현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3년 귀국해서는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했다. 그 공으로 ‘IDEA 디자인 브론즈상’을 수상했다.
나름 잘 나가던 그는 2018년 구글 본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 속에서 열등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고, 심각한 가면 증후군에 시달렸다. (사실과 다르게) 무능이 탄로나 망신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마음 졸였다.
그때 살기 위해 저자가 했던 건 두 가지.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이뤄냈을 때 자신을 칭찬했다. 둘째는 “떠오르는 대로 노트에 적어 머리에 있는 걸 밖으로 쏟아” 내면서 불안감을 조절했다. “(일기를 포함해) 막연한 감정을 그냥 두지 않고 글로 써 보면 훨씬 생각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었고, “그게 쌓인 후 다시 읽어 보면 어쩜 그렇게 똑같은 걱정과 고민을 주야장천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게 됐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아~ 쫌. 그만하고 무브 온”이라고 기함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문제해결 능력을 지니라고 권면한다. 더 정확하게는 문제 발견 능력을 강조한다. 저자는 “채용 면접 과정의 핵심은 지원자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역량, 이를테면 사고력, 통찰력, 창의력,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은 문제해결 역량 이상으로 문제 정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라며 “이는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특별한 역량은 문제 발견 역량이다. 디자이너가 지난 ‘사람을 이해하는 촉’으로 소비자, 제품, 서비스, 사회의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결국은 문제 정의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