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가 말하는 ‘환대’와 ‘연대’의 가치
이길보라가 말하는 ‘환대’와 ‘연대’의 가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6.0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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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감독 [사진=JuJunYong]

영화감독 이길보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코다(CODA)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코다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뜻한다. 사전에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기자는 과거 이길보라와 진행했던 인터뷰 기사를 퇴고할 때, 사전의 뜻을 그대로 가져와 활용했다. 기사가 나간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건청인은 ‘건강한 청력을 가진 사람’이어서 누가 건강하고 누가 건강하지 않느냐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기존 사전적 의미를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길보라는 사회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다. 거슬러(against) 되묻는 것이다. 사실 영화감독도 그런 직업이 아닌가.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에 특별한 시간 감각을 부여하는 사람. 그는 언제나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간과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쩌면 그건 세상을 바라보는 이길보라만의 고유한 태도일 것이다. 그 태도는 때로 어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통념에 갇힌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함으로써 이룩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가 최근 『당신을 이어 말한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장애인권, 성폭력, 임신중지, 불법촬영물 등 당대의 화두를 장애학과 여성학의 관점에서 독해한 책이다. 특히 인상적인 챕터는 자꾸만 장애를 설명하게 하는 언론에 대한 일침을 적은 부분이다. 그는 농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 개봉 후 수많은 기자와 만났을 때, “농인과 농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과 인터뷰하는 일은 달랐다”며 “왜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농인’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나열할 필요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기자는 그 대목에서 뜨끔했다.

이어 그는 장애 담론이 ‘장애 극복 서사’에서 ‘장애 해방 서사’로 전환될 때, 비로소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러한 수사는 장애인을 비정상적인 존재 혹은 어딘가 결여되어 있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규정한다. 장애인을 위하는 척하면서 비장애인과 구분하는, 은근한 차별의 시선이 깔린 표현이다. 이처럼 이길보라는 사회가 정상으로 간주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재해석하고, 변주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한다.

도서출판 동아시아

이길보라의 언어는 간명하면서 핵심을 찌른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태도를 거두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자고 말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도와주는 행위를 마치 의식 있는 시민의 고상한 취미인 양 소비하지 말고, 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와 토양 마련에 힘쓰자고 주장한다. 동시에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각자가 가진 고유성을 인정할 때까지, ‘소수’가 ‘다수’에게 매번 자신의 소수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함께 나아가자고 역설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올바른 태도로 환대하는 일과 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게 온갖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들이밀고 있다. 타자에 대한 환대가 부족한 것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으며, 복수하지 않는 ‘절대적 환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환대는 자연스레 ‘연대’로 이어진다. 이길보라는 책의 끝에 “나는 쓰고 그리고 찍고 노래하고 춤추는 내 쪽의 사람들을 나의 방식대로 만들어보려 한다”며 “나를 이어 당신도 말하고 글 쓰고 외칠 수 있게 되기를”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이어’는 앞서 행해진 말과 행동에 ‘계속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이어’는 ‘잇다’의 활용형으로 공간과 공간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서로 통하게 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서로 떨어져 있는 양자 사이의 관계를 맺어 주는 것. 바로 연대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존립하고 모험하면서 연대하자는 게 이 책의 소중한 목소리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환대와 연대가 쌓일 때, 우리는 이 책의 부제처럼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길보라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Activist)이자,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Artist)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아티비스트(Artivist) 이길보라의 운동과 예술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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