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남을 살리려 자신을 희생한 젊은 이름들 『1991, 봄』
[책 속 명문장] 남을 살리려 자신을 희생한 젊은 이름들 『1991, 봄』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6.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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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한국의 현대사에는 1960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17살의 김주열로부터,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안고 화염에 휩싸여 생을 마감한 전태일, 공수부대의 발포에도 광주 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윤상원의 이름 들이 새겨져 있지만, 5·16 쿠데타로부터 신군부의 집권까지 교활하고 어이없는 반역사적 시간들도 보란 듯이 반복되었다. 20년이 넘게 지나서야 〈1991, 봄〉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1987년과 1991년 사이의 시간들을 다시 응시했다. 이 글로 써낸 지난한 이야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훨씬 깔끔한 문장들로 정리되어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다만 내가 당시의 자료들을 되짚어 올라가면서, 그리고 촬영을 다니면서 1987년 이후 1991년 직전의 기간 동안 영화를 찍기 전에는 자각하지 못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몇 순간이 있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23쪽>

1991년 4월 19일 경남대생 정진태와 원광대생 유철근이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타에 맞아 뇌수술을 받는 중상을 입었다. 다음 날에는 전남대생 최강일이 KP 최루탄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예고된 참사’에 노출되어 있는 동안,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던 초강경 일변도의 국가폭력은 등록금 문제로 촉발된 시위에서 숨진 강경대와 안기부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 설립 방해 공작 와중에 의문사한 박창수 노조위원장 그리고 시위 도중 토끼몰이식 진압에 사망한 성균관대 김귀정에 이를 때까지 망설임조차 없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듯, 그것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겨우 손을 잡은 약자들의 연대를 찢어 놓는 데에 결국 성공한다.<57쪽>

1991년 봄의 일들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보수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강경대는 (1987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학원자주화 투쟁 와중에 숨진 것이니, 박종철이나 이한열만큼 기억될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진영 가름이 무색하도록 존재해 온 빈곤한 역사적 감각에 기대고 있다. 강경대도 이한열이 섰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전위였다.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었던 학원자주화투쟁, 노동쟁의뿐만 아니라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제기했던 위안부 문제까지 1991년에 일어난 모든 일은 1987년의 ‘호헌철폐 독재타도’만큼이나 절실했던 최전선의 싸움이었다. 6공화국의 말뿐이던 민주주의를 자신의 삶 깊숙이까지 꽂아 놓으려던 숱한 이름 없는 이의 싸움들을 이제는 다르게 직면해 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133~134쪽>

[정리=전진호 기자]

『1991, 봄』
권경원 지음 | 이강훈 그림 | 너머북스 펴냄 | 302쪽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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