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주식투자는 ‘노동’이다
단언컨대, 주식투자는 ‘노동’이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6.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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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인간은 온갖 ‘노동’에 둘려 쌓여있다. 가사노동부터 임금노동까지, 집 안밖에는 인간이 해야 할 노동으로 가득하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일하는 시간으로 인생을 보내는 인간에게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설파하는 일은 새삼스럽다.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는 책 『나의 인생』에서 “일하지 않고서는 순결하고 즐거운 삶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은 삶의 필수 조건인 것이다.

최근 민음사에서 펴낸 인문잡지 『한편』의 5호 주제는 ‘일’이다. 일을 둘러싼 다양한 의미와 경험을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개미투자자, 플랫폼노동자, 예술가, 돌봄노동자, 이주노동자, 회사원, 프리랜서, 한국어 강사까지 다루고 있는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책에 실린 글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인류학자 김수현의 글 「개미투자자가 하는 일」이다. 그는 최근 ‘코인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해 “오늘날 불로소득은 가진 자가 아닌 갖지 못한 자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가 되었다”며 “불로소득은 공동체의 손가락질 대상에서 계급 상승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서사로 탈바꿈했다. 불로소득은 청년세대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어 “손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는 돈이 쉽게 벌려서가 아니라, 이제는 일해서는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 버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며 “근면 성실하게 일만 해서는 청년 세대 앞에 펼쳐진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그 자신과 부모의) 노후 자금 마련 등 인생 과업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가 없다”고 말한다. 노동하지 않는 부르주아들의 전유물인 불로소득이 이젠 흙수저들의 유일한 희망이 된 것이다.

최근 흙수저 여성 직장인들의 코인열차 탑승기를 다룬 장류진 작가의 소설 『달까지 가자』(창비)가 주목받은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여성은 가상화폐인 이더리움(Ethereum)을 통해 수억 원의 돈을 번다. 그들은 번 돈으로 사치와 낭비를 일삼지 않고, 생활과 존립을 위해 ‘다시’ 몸부림친다. 수천만 원의 명품 가방을 사는 게 아니라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까마득하게 쌓인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쓰는 것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밀레니얼 세대에게 불로소득은 더 이상 금기의 대상이 아니다. 김수현의 논의처럼 “이제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게 나태와 게으름의 결과로 이해”되고, “자본소득을 추구하는 일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양성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달리 말하면, 주식투자가 노동으로 인정받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식투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김수현은 청년 개인투자자들이 경제적 안정을 위해 주식투자를 하지만 오히려 투자를 할수록 경제적 불안정에 허덕인다고 지적한다. 청년 개인투자자들이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기민하게 대응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안정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계급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무슨 종목이 좋아?’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같은 질문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다. 희망과 합법의 언어로 포장된 금융투자의 실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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