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인 듯, 개나리 아닌, 개나리 같은...
개나리인 듯, 개나리 아닌, 개나리 같은...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5.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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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화가 개인전 ‘Spring Light’

[독서신문 박용채 편집주간] 이미 여름의 문턱이지만, 지난 3월만 해도 올해는 봄이 없겠거니 생각했었다. 설령 오더라도 매우 느릴 것으로 여겼었다. 그럼에도 성큼 다가왔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꽃피는 순서도 변함없었다. 남녘에서 산수유, 홍매화가 피어오르더니 아파트 정원에는 목련이 고개를 내밀었다. 서울 성곽길의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진 것도 잠시였다. 2주 전 다녀온 경기도 남양주 축령산은 냉해에 망울도 펴지 못한 채 1년의 기다림을 무망하게 끝낸 철쭉이 지천이었다.

불쑥 봄꽃을 떠올린 것은 김진숙 화가의 개인전을 다녀오고 나서다. 그가 천착하는 대상은 개나리다. 초대장은 흥미롭다. “생경한 노랑의 색채가 주변을 물들이면 그제야 우리는 그 곳에 있었던, 알 수 없던 덤불이 개나리임을 깨닫는다. 꽃을 달고 나서야 비로소 제 이름으로 불리는 개나리의 숙명” “집 앞 화단에 거짓말처럼 피어나 노란 꽃 무더기의 실체를 알아챈 어느 날 아침 개나리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나리가 걸려있는 화랑은 ‘떠난 봄’을 돌려세웠다. 그의 개나리 형상은 다양하다. 복잡한 듯 단순하고, 뭉친 듯 흩어지고, 흐트러진 듯 가지런하다. 요즘 유행하는 운율을 빌리면 ‘개나리인 듯, 개나리 아닌, 개나리 같은’.

손과 붓, 나이프로 터치하고 마름을 기다리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는 마티에르 기법은 기다름의 미학처럼 때로는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거칠게 다가온다. 이 때문에 그의 개나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수양버들로, 샛노란 은행나무처럼 여겨진다. 기묘한 감흥이다

 그는 “꽃은 안정과 휴식, 아름다움을 주지만, 꽃이지 않을 때는 한낮 덤불이나 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꽃은 봄이 닥치면 제 존재를 맘껏 알린다. 꽃에 인생을 덧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뒤늦게 꿈을 현실화하고 있는 작가의 인생 말처럼 들린다.

고은 시인의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나 장석주 시인의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대추 한 알)가 자연스레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이 들어 비로소 보이는 걸까.

개나리에서 무엇을 보려 했던 걸까. 흔히 미술사학자들은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사회, 역사적 환경과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진숙의 작품은 굳이 타인의 세상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는 그 자신이 담겨있고, 감상자들은 이런 그의 생각과 꿈, 그만의 취향을 읽어내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흔히 나를 살리는 말로 ‘아생언(我生言)’이라는 표현을 쓴다. ‘진정한 그림은 생명성을 채집하는 것’이라는 화가 김진숙에게 개나리는 아생화(我生花)일지 모르겠다. 한참 봐도 새롭고, 오래 봐도 지겹지 않은 것. 그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개인전은 오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힐탑빌딩 3층 연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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