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 황현탁
  • 승인 2021.05.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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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⑫]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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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에밀리 토머스 영국 더럼대교수는 『여행의 의미』라는 책에서 “여행기는 대부분 여행경험을 기록하는 논픽션이지만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여행기』, 존 김레트의 『야생의 해안』에는 많은 허구들이 포함되어 있다”며 “실제하지 않는 상상속의 지역을 여행하는 가장 재미있는 여행소설로 영국 여류철학자이자 작가인 마거릿 캐번디시(1623~73)의 소설 『불타는 세계라 불리는 새로운 세계의 기술』”을 적시했다. 이 소설의 번역자인 권진아씨는 아예 “공상과학소설은 『불타는 세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잘라 말할 정도이다.

소설의 요지는 이렇다. 어느 이국땅을 여행하던 상인이 해안에서 젊은 귀족 여인을 납치한다. 태풍을 만나 북극까지 표류하던 중 상인과 선원들은 모두 사망하고 여인만 살아남는다. 낯선 땅에서 반수반인(곰, 벌레, 물고기, 새, 파리, 개미, 거위, 이, 원숭이, 거인 등등)의 다양한 인종을 만나 그들의 황제가 사는 ‘불타는 세계’로 안내된다. 황제는 그녀를 신으로 숭배할 것을 자청하면서 황후로 모신다. 그녀는 태양, 달, 별, 공기, 바람, 눈(雪) 등 자연현상의 운행을 파악한다. 또 망원경과 확대경도 이용하고 학자들에게 생물에 피(血)가 있는지, 생존을 위해 공기와 물이 필요한지, 자연체의 원소 등 공공에 도움이 될 연구와 관찰을 명하는 등 교회와 국가통치에 매진한다. 황후는 기술과 불타는 세계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한 뒤, 자신이 ‘떠나온 세계’로 관심을 돌린다.

황후는 불타는 세계의 여러 영(靈)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가상디, 데카르트, 헬몬트, 홉스, 모어 등 당시 명사들을 추천받지만 여성인 '뉴캐슬 공작부인'을 서기로 선택한다. 공작부인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자 황후는 공작부인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 한다. 불타는 세계는 질서정연하고 개선할 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불타는 세계로부터 고국 여행에 나선 황후는 고국을 괴롭히는 인접국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다. 그 고국이 바로 영국이며, 군주이자 지배자는 영국 국왕이다. “해협에 대한 세습적 권리와 특권을 강탈하려는 여러 나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는 영국국왕의 싸움을 돕고자 왔으며, 국왕이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공작부인은 내란 전에 남편이 가졌던 재산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불타는 세계로 돌아온 황후와 즐거운 해후를 한 황제는 공작이 가지고 있던 마굿간과 승마장, 연극용 극장 등에 자문을 받은 후 공작부인을 귀국토록 한다.

작가인 마거릿은 찰스 1세의 비인 프랑스인 ‘앙리에타 마리’의 궁정 여관(女官)으로, 왕당파와 의회파 대립 시 파리로 도피했으며, 역시 왕당파이며 상처한 30년 연상 윌리엄 뉴캐슬 백작과 결혼한다. 이후 백작은 영국에서 추방되고 재산을 몰수당한다. 왕당파의 승리로 찰스2세가 즉위한 후 백작은 공작 작위를 수여받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 ‘남편이 가졌던 재산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공작은 책 앞머리에 “콜럼버스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내고 미국이라 이름 지었네. 새로운 세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 그대(마거릿)의 창조적 상상력은 생각했지. 순수한 재치로만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그대의 불타는 세계, 별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 만물을 천상의 불로 비추네”라고 헌정사를 쓰고 있다. 그는 부인보다 3년 늦게 사망하였다.

마거릿은 ‘독자에게’란 서문에서 “내가 창조한 세계는 불타는 세계로 이름 붙였다. 이야기의 첫 번째 부분은 로맨스적, 두 번째는 철학적, 세 번째는 환상적인데,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만족을 준다면 나는 아주 행복한 창조자가 될 테고,”라고 말한다. 이어 “나는 욕심은 없지만 야심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그 어떤 여인보다 크다.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처럼 세상을 정복할 힘도, 시간도, 기회도 없지만 한 세상의 지배자로 살지 못하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과학이 철학으로부터 분리되기 전인 17세기에 여성으로서 ‘자연철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복장이며 행동도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의 ‘독자에게 드리는 말’에서 그녀는 “내가 만든 세상들, 즉 불타는 세계와 철학적 세계는 모두 물질의 가장 순수한, 다시 말해 합리적 부분들인 내 정신의 일부분으로 고안되고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쟁보다 평화, 교활함보다는 재치, 미모보다는 정직을 더 존중하는 나는 헬레네 같은 인물들 대신 마거릿 뉴캐슬이라는 인물을 택했고, 이를 이제는 이 지상 세계 전체를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단한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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