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인생 고백 “그러라 그래”
양희은의 인생 고백 “그러라 그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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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늘 흔들렸다"
30대 "달라진 건 없었다"
40대 "겁이 조금 없어졌다"
50대 "여유가 생겼다"
60대 "흔들릴 일 드물어졌다"
70대 "모래알처럼 덧없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침 이슬’ ‘한계령’ ‘엄마가 딸에게’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가수이자 22년째 MBC 라디오 ‘여성시대’ DJ. 데뷔 51년을 맞은 양희은씨(71)가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쿨한 냄새가 짙게 밴 『그러라 그래』(김영사). 저자는 지나온 삶과 노래,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책에 담아 ‘쉽지 않은 인생을 정성껏 잘살아 보고 싶게 만드는 애틋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고된 삶이 싫어 빨리 서른이 되길 원했노라고 고백한다. 주변에선 “서른 지나면 뾰족한 수가 있다니?”라고 웃어넘겼지만, “서른 살만 되면 확실히 무게 중심을 잡고 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젊은 시절 양희은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엄마의 빚보증과 양장점 화재”로 집에 “빨간색 차압 딱지가 붙었다” “열아홉 살의 하루하루는 기운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깜깜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송창식 형(오빠 대신 형이란 호칭을 주로 사용함)”의 도움을 받아 열아홉 살의 나이에 업소 무대에 올랐다.

깜깜한 그의 삶에 한 줄기 섬광이 드리운 건 이듬해인 1971년. <대한일보> 사옥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서 훗날 자신의 최대 히트곡이 될 노래 ‘아침이슬’을 작사·작곡한 김민기를 만났다. “기인 바암 지이새우우고 푸울잎마다 매애치인” 노래에 흠뻑 빠져든 그는 1971년 첫 음반에 ‘아침 이슬’을 싣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김민기는 “그래라!”라고 “허무하다면 허무하게” 허락했다.

하지만 행복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1973년 건전가요로 뽑혔던 ‘아침 이슬’은 어느날 갑자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독재정권의 비위에 거슬렸을 것으로 추정할 뿐 “그 이유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1981년에는 암 수술을 하고 석 달 시한부 판정을 받아 생사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다. 1987년 ‘아침 이슬’의 금지가 풀리고, 그 사이 ‘서울로 가는 길’과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등의 곡을 발표해 호응을 얻었지만, 음반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였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저자는 “서른여섯 살이 넘도록 가수로서의 권리를 찾아가며 음반을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술회한다. ‘아침 이슬’로 저자에게 당시(1971년) 돈으로 5만원이 주어졌지만, 저자는 “이 돈을 받으면 나는 오만원짜리 가수가 되는” 것만 같아 거절했다.

이십 대의 양희은은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오른 무대에서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고, 취객이 위협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있는” 그를 보고 누군가는 “잘난 척한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일찍이 서른을 꿈꿨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고” 흔들림은 여전했다. 사십 대가 되니 “겁이 조금 없어졌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밝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십 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고, 칠십이 되어서는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간 젊음을 회상하게 되었다. 저자는 “노래가 무언지 ‘쬐꼼’ 알 만한데 더이상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토로한다.

나이 서른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당시 “이 아이만 살려주시면 내 눈을 가져가셔도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했던 어머니가 어느덧 치매 노인이 되어 이제는 “엄마가 제발 아프지 말고 평안하게 앞으로 10년만 더 사셨으면”이라고 기도하는 처지에 놓인 저자. 70년 인생 역경을 겪어내며 22년째 라디오 DJ를 맡고 있는 저자는 “그래서 아팠구나. 나라도 그랬겠다”며 위로보다는 공감을 건네고, 말조차 건네기 어려운 사연에는 음악으로 답변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노래가 “‘나도 그거 알아’ 하며 내려앉는 손, 그런 손 무게만큼의 노래이고 싶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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