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서울 중앙지법 민사 15부는 지난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지난 1월 같은 법원 민사합의 34부가 다른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것과는 정반대이다. 법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해도 똑같은 사안을 놓고 다른 판단을 하는 데 국민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울 서초동 법원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국민들이 주목하는 판결이 쏟아진다. 이 중에는 이번 판결처럼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적지 않다. 형사사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예컨대 피해자보다 가해자 편에 서는 듯하고, 납득할 수 없는 법 해석을 갖다붙이는 등 보통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판결이 많다. 실제 같은 사안에 대해 판사마다 양형이 들쑥날쑥하고 형식적인 반성문 몇 장으로 감형되는 등 법원이 국민의식과는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경우는 허다하다.
최정규 변호사가 최근 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의 행태와 그로 인해 사법개혁의 시급함을 주장하는 책 『불량 판결문』(블랙피쉬)을 펴냈다. 책은 그동안 재판정에서 있었던 부당한 판례에 문제를 제기하며 진짜 ‘공정과 정의’가 이루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되묻는다.
책은 불친절한 판결 사례 중 하나로 전남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을 소개한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변론을 맡아 긴 싸움 끝에 승소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해자들의 형 집행을 유예하면서 ▲피해자에게 주거와 식사를 제공 ▲밀린 임금을 대부분 지급함으로써 피해가 상당 부분 회복 ▲좀처럼 노동력을 구할 수 없어 범법행위는 묵인되어 왔다는 이해 못 할 근거를 제시했다.
최 변호사는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공박한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도 판결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의식주를 제공한 것은 노동력 착취를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다.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재판이 시작되자 지급한 것도 비상식적이다. 노동력을 구하기 힘든 지역적 관행 역시 감형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 외에도 초범이면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고, 상당수 판결문에 패소 이유가 생략되었거나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기록되고, 판례를 기계처럼 복사 붙여넣기 하며 권고 기준보다 낮은 양형 판결을 내리는 등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계속 나온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법원의 비상식에 대처하기 위해 법관 임용과 판결 과정에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법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부당한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법원의 불량 서비스와 판결문에 결코 눈감아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재판의 녹음·속기 신청’을 제시하고 나아가 국민이 법관을 임용하는 데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를 제안한다. 최 변호사는 “법원의 핵심 구성원인 법관의 선발과 평가, 그리고 해임 등 전 과정에 국민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를 다 함께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