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우리는 왜 가상화폐에 빠진걸까… 장류진 『달까지 가자』
‘구질구질한’ 우리는 왜 가상화폐에 빠진걸까… 장류진 『달까지 가자』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4.20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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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장류진은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은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작은 슬픔과 행복을 긍정한다”(인아영) “오늘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정이현) “판교 노동자들 울린 테크노밸리의 하이퍼 리얼리스트”(박세회) 등의 평가를 받았다. 이후 장류진은 「연수」와 「도쿄의 마야」라는 단편소설로 제11회 젊은작가상과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박상영, 김초엽 등과 함께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들이 꼽은 ‘2020년대를 대표할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류진의 소설을 특징짓는 말 중 하나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그는 동시대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 인아영 평론가는 장류진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의 작고 평범한 기쁨을 길어 올리는 작가로 표현한다. 이 때문인지 장류진의 소설을 단순한 세태소설(世態小說)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인의 사사로운 생활 및 사회의 풍속, 유행 따위에만 천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반된 평가 속에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가 출간됐다. 소설은 흙수저 여성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를 다루고 있다. 장류진은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소재를 가져와 가상화폐 열풍에 편승하는 젊은이들의 ‘영끌 투자’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소설 속 화자인 ‘다해’는 직장 동료 ‘은상’ ‘지송’과 특별히 친하다. 세 사람은 모두 “기존에는 없던 프로세스로 입사한” 비공채 출신이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 되레 여러 가지 이유로 집안에 빚이 있고, 집값이 싼 동네에 거주하며, 작은 평수의 원룸에 살고 있다. 그들이 구질구질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푼 두푼 모은 재산을 가상화폐에 올인하는 방법 외엔 없다.

주방과 침실이 분리된 투룸에 살기를 바라던 다해는 이사를 앞두고 마음에 드는 방을 발견한다. 그곳에 살기 위해서는 “보증금은 2,000만원을 더 내야 했고 월세는 지금보다 15만원”을 추가해야 한다. 다해는 물정에 밝고 수완에 능한 은상이 가상화폐의 일종인 이더리움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와 함께 ‘코인열차’에 탑승한다. “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그만 좀 하면 안 될까?”라며 다해와 은상을 경멸했던 지송 역시 종국에는 “언니,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며 코인열차에 탑승한다.

‘떡상’과 ‘떡락’ 사이를 오가며 “웃음과 비명의 사이클”을 반복했던 세 사람은 마침내 수억원의 돈을 벌게 된다. 그들은 건물을 사고, 차를 사고, 학자금 대출을 갚는다. 돈을 번 은상과 지송은 저마다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지만 다해는 그러지 않는다. “일단은, 계속 다니자”는 다해의 말로 소설은 마침표를 찍는다.

소설의 결말에 대해 한영인 문학평론가는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이 ‘떡두꺼비’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적 삶의 조건으로 누릴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해피엔드’ 뒤에 남아 있는 삶의 시간 속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해피엔드’ 이후의 시간은 숙제처럼 남겨 놓은 듯 보인다”고 말한다.

장류진은 다해와 은상, 지송의 고군분투를 통해 직장인들의 고충과 애환을 재기 발랄하게 묘사한다. 소설 속에는 ‘젠더’ ‘유리천장’ ‘흙수저’ ‘저성장’ ‘부의 불평등’ ‘공정’ 등 동시대의 키워드가 모두 녹아있다. 하지만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이 책은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으며 빠르게 읽힌다. 장류진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소설이다.

다만 결론 부분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다해와 친구들에게 3억씩 나눠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장류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소설은 일견 의미가 있다. 어지럽고 각박한 세상에 흙수저가 ‘3억 정도’ 벌고 마무리되는 설탕 같은 소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자면, 작가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3억’이라는 액수는 청년들의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위한 국가의 복지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과 은유를 걷어내고 건조하게 바라보면, 주인공이 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인 돈을 ‘평등한 사회적 삶의 조건’으로 연결하는 위 평가는 지나친 포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판단은 독자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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