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의 북 리뷰] 주강현이 조기를 평전의 반열에 올린 까닭은
[박용채의 북 리뷰] 주강현이 조기를 평전의 반열에 올린 까닭은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4.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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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도서출판 바다위의정원]

흔히 평전은 어떤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접근할 방도가 마뜩잖을 때 손이 가는 책이다. 예컨대 『마르크스 평전』 『스탈린 평전』 『간디 평전』 같은 것들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문익환 평전』이니 『신영복 평전』 등이 있을 터이다. 필자가 가장 근래에 읽은 평전은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이다. 물론 그것도 7~8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백석 평전』을 불쑥 호출한 것은 주한 벨기에 대사가 최근 <독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백석의 시에 흠뻑 빠져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푸른 눈의 이방인이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셀레다가였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같은 시어를 읽어내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놀랍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인문학자인 주강현 박사가 최근 『조기 평전』이란 저서를 내놨다. 1998년 『조기에 관한 명상』이란 제목으로 나온 초판본을 전면 재집필한 책이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물고기는 ‘음식으로서 먹는 것’ 혹은 ‘비유할 때 쓰는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인섭 교수가 쓴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호하다』를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 항일재판 투쟁을 벌인 변호사 이인이 당시 경찰에 체포 구금된 조선인의 신세를 “죄의 유무와 형의 경중을 불문하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 처지”로 비유하며 비분강개하던 모습에 참담해 하던 터였다.

따지고 보면 인문학자가 물고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여사(餘事)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다르다. 민속학자로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한반도 바다 이야기를 다룬 『관해기』 『독도강치멸종사』를 비롯해 『등대의 세계사』 등 관련 저서만 60여권을 펴낸 그다. 해양문화연구원장, 제주대 석좌교수에 한국해양박물관장도 지냈다.

많은 물고기 중 하필 왜 조기인가. 저자는 조기를 ‘국민 생선’이라고 말한다. 기실 조기는 어렸을 때부터 밥상머리에 자주 올라오던 생선이다. 서해에서 잡힌 조기들은 법성포로 들어가 영광굴비가 되어 제상에 올라가면서 ‘절을 받는’ 귀한 몸이 되기도 했다. 내친김에 책에 소개된 조기의 생태 지식을 몇 가지 짚어보자. 때마침 조선 후기 지식인 정약전을 그린 영화 <자산어보>가 개봉되고, 동명의 책도 출판됐다. 정약전은 『자산어보』 첫머리에 석수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기, 민어, 애우치를 연관 어종으로 설명했다. 조기에 대해서는 ‘모양이 민어와 비슷한데 몸이 조금 좁다’ ‘맛은 민어와 비슷한데 더 담백하며 알은 젓갈로 먹기에 적합하다’고 쓰여있다. 조기에는 참조기, 부세 등이 있는데 참조기의 수명은 최대 11년, 몸무게 280g, 길이는 평균 20~30㎝, 마리당 포란수는 길이 30㎝에서 3만~7만개에 달한다. 재미있는 것은 성비이다. 암컷이 66.6%이고, 수컷은 33.3%로 분포돼 있다고 한다.

조기는 동중국해에 머물다 서해로 올라와 알을 낳는다. 『자산어보』에는 “흑산도 앞바다에서 6~7월에 밤낚시로 잡는데 산란을 끝낸 다음이어서 봄에 잡힌 놈보다 맛이 못하며, 말려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가을이 되어야 조금 나아진다”고 묘사돼 있다. 이번 『조기 평전』에는 23년 전에는 없던 새 자료가 다수 포함됐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일본 강점기 기록, 그리고 녹도·원산도·흑산도·외연도·연평도 등 전라, 충청, 경기도 섬과 포구를 전전하며 전해 들은 조기잡이 어부들의 구술까지 담았다. 연평횟집에 걸려있는 1960년대의 조기잡이 선단 사진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연평도 장산곶을 돌아 최종목적지인 평안도 철산의 대화도까지 북상한 조기에 대한 황해도와 평안도 어부들의 증언 채록이 담긴 북한 사회과학원 민속학연구소의 1950~60년대 자료까지 들어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옛 모습이다. 요즘 마트에서 팔리는 조기는 대형선단들에 포획된 것들이다. 어장 자체도 이동해 과거 이름을 날렸던 칠산, 연평, 대화도 어장은 소멸됐다. 조기를 잡던 전통 포구는 어업사적 임무를 마쳤다. 어민들의 생활풍습에 기여해온 파시와 풍어굿 같은 풍습도 막을 내렸다. 종의 멸종사라 얘기할 만하다. 그런 측면에서 ‘황해 문명권의 독특한 어업문화를 창출한 어느 물고기 이야기’란 부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조기의 북상 행로를 따라가며 종으로 횡으로 풍속과 역사, 서해 해양사를 엮어가는 그의 박람강기한 지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60대 중반을 넘겨서도 여전한 저자의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그를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다음 작품을 물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명태란 대답이 돌아왔다. “술을 좋아해 코다리에서 북어까지 안주와 해장용으로 수도 없이 명태를 먹었다. 이런 명태를 다루지 않으면 그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천생 인문학자이다. [독서신문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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