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들의 희생과 맞바꾼 산부인과학 발전
흑인 여성들의 희생과 맞바꾼 산부인과학 발전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4.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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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앨러배마 주에 세워진 최초의 미국 여성병원 [사진=갈라파고스 제공]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3년 전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복판에 동상 하나가 철거됐다. 미국 산부인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매리언 심스의 동상이었다. 동상 철거 당시 흑인 여성 활동가들은 국부에 붉은 물감을 묻힌 환자복을 입고 “심스는 영웅이 아니다”고 외쳤다. 심스는 산과 방광-질 누공 수술법은 물론 심스질경 등 다양한 산부인과 수술 기구를 개발해 여성의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동상은 왜 철거됐을까.

책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갈라파고스)은 심스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로, 의학사학자이다. 오언스는 19세기의 의학저널, 법원 소송 사건, 의사 일지 등 여러 기록물을 살피며 당시 백인 가부장주의에 함몰돼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과 흑인 여성, 이주민 여성의 흔적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스에 대한 어두운 사실을 확인한다. 심스는 남북전쟁직전 미국 앨라배마주에 흑인 노예여성들의 방괄질루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을 개설한다. 여성 흑인 노예들은 심스의 환자 겸 수술 조수 일을 했다. 심스는 외견상 노예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선행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거주지로 돌아가 소유주의 착취를 견디며 노예의 의무를 이행했다. 한편으로는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수술용 표본 역할을 강요받았다.

백인 엘리트 남성들은 19세기 인종 형성에 관한 이론을 제기하면서 흑인 여성들이 백인 여성들보다 생식력과 체력이 뛰어나고 고통에는 둔감하다고 주장했다. 난소절제술이나 제왕절개술과 같은 미국의 선구적 외과 수술의 대부분은 이같은 인식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미국 헌법제정에 한 몫을 했으며, ‘미국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저민 러시 조차도 흑인이 흑인인 이유는 유전적 병리 증상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흑인 여성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주민 여성들도 피해자였다. 대체로 나이가 많고 가난하며 비혼인 이들의 출산은 환영받지 못했다. 자유민이었지만 직업을 갖기 힘들었던 이들은 성 노동에 종사한 이들은 남성 의사들에게 자제력이 없다는 평을 받으면서 그들의 실험대상이 됐다.

오언스는 “당시 유럽에 비해 뒤처져있던 미국 산부인과의 발전이 흑인 여성과 빈민 여성에 대한 착취에 기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흑인 간호사들의 경우 의학적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로서는 크게 헌신했다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산부인과의 어머니’로 불릴만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감수한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는 “우리는 선조 여성들의 피와 눈물이 스민 과학 발전의 산물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여성주의적으로 사용할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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