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진짜 ‘미성년’은 누구인가… 영화 ‘미성년’
[송석주의 영화롭게] 진짜 ‘미성년’은 누구인가… 영화 ‘미성년’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4.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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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감독, 영화 <미성년> 스틸컷

※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리’와 ‘윤아’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고생들입니다. 친구라기보다는 그냥 동창에 가깝죠. 어느 날 주리는 아빠 ‘대원’이 윤아의 엄마 ‘미희’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리는 이 사실을 엄마 ‘영주’에게 숨겨요. 하지만 윤아가 그것을 영주에게 폭로하면서 사건은 커집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미성년>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미성년>은 <타짜>(2006) <추격자>(2008) <황해>(2010) 등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김윤석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충무로에 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마초적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범죄영화가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간 김윤석이 출연한 영화들이 대개 ‘그런 영화’들이었으니까요.

다행히도 <미성년>은 미성년을 강탈하는 잔혹한 범죄영화가 아닙니다. 불륜영화의 장르적 외피를 두른 이 영화의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의 소중함’이에요. 영화는 ‘불륜’과 ‘생명’이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소재들이 빚어내는 엇박자를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난장판을 지켜보고, 수습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미성년과 성년을 구분하는 ‘진짜 잣대’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되지요.

불륜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는 불륜 당사자들의 욕망과 탈주, 좌절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지요. 특히 이 과정에서 여성은 불륜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 제공자, 즉 ‘음탕한 존재’로 규정되면서 철저하게 응징당합니다. 1936년에 개봉한 양주남 감독의 <미몽>과 1956년에 개봉한 한형모의 <자유부인>이 대표적인 예이죠.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불륜영화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가지기도 합니다. 불륜영화가 개인적 범위나 관계 따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요 캐릭터들의 액션과 리액션을 통해 변화한 시대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미성년>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불륜영화의 익숙한 틀을 가져오면서도 그 틀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돌파하며 기이한 성찰적 계기를 마련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나 이제 아빠 딸 안 해” “내가 엄마를 좀 좋아하게 해줄 순 없었어?” “왜 아줌마가 화를 내요? 뭘 잘 했다고?” 등의 대사를 쏟아내며 어른들의 위선에 일침을 가합니다. 동시에 영화는 무책임한 가부장 대원을 혹독하게 처벌하고, 미희와 영주 등 중년 여성들의 욕망을 보편타당한 논법으로 제시하면서 당대의 화두인 페미니즘을 지혜롭게 형상화합니다.

끝으로 영화는 대원과 미희 사이에 태어난 아기 ‘못난이’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가 불륜을 저질렀던 놀이터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버린 못난이의 뼛가루를 우유에 태워 먹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못난이를 위로하고, 자신들의 마음에 깊이 새기겠다는 일종의 제의(祭儀)인 것이죠. 이처럼 <미성년>이 불륜영화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삶을 반성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장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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