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인 페미니즘의 가능성
포용적인 페미니즘의 가능성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0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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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책을 다채롭게 해석하는 전문가 서평을 비정기적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반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김현미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로 이다혜 <씨네21> 기자가 펜을 잡았습니다.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라이프스타일’, 즉 생활양식이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을 쓴 김현미는 삶의 모든 영역, 그중에서도 여성 간의 연대, 일, 소비를 중심으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다룬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보다는 페미니즘을 접한 뒤, 삶의 구체적 경험들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려는 이들부터 페미니즘 운동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이들을 위한 책이다. 젠더의 정치경제학, 노동, 이주, 환경 문제에 중점을 둔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온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현미의 관심사가 이 책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노동 환경은 1장 「신자유주의 경제와 여성의 일터」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신자유주의의 규제 완화와 그로 인한 노동 유연화, 금융자본주의가 디지털 자본주의의 확산과 맞물리면서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여성들이 운영하는 상호작용형 인터넷 BJ 방송은 ‘성애적’ 요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대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35.4%로 높은 편인데, 심지어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뒤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잦아 “횡단적 하향 이동 경향” 역시 높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어느 정도 일하다가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경력에서 이탈했다면, 지금은 능력 있는 여성들의 고용 형태 자체가 그들의 아이디어를 빼내고 폐기 처분하기 용이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스타트업들도 여성을 선호합니다. 다만 주로 ‘스타트’ 하는 단계에서만 고용해요.”(61쪽)

성폭력 역시 여성의 일터에서 위협적인 요소다. 기성세대 남성들은 강제력, 위력을 동원하고서도 자신의 남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불륜’이나 ‘사랑’으로 포장한다. 여성을 동료나 협업자가 아닌 그저 ‘여자들’로 보고 자신을 위로해주고, 애교를 떠는 역할로 생각하는 일도 흔하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다른 여성의 감정노동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4장 「여성 연대를 위한 실천들」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남성 상관에게는 일과 관련된 가르침이나 노하우, 팁만 기대하는데 여성에게는 전문적 지식뿐 아니라 감정, 돌봄, 윤리, 자매애를 기대한다는 지적이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2018년 5월부터 7월까지 김현미 교수가 ‘줌마네’와 함께 진행한 강연 ‘일상의 여성학: 인간적인 노동과 삶을 위한 일상의 재배열’의 4회 차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서문에 적힌 “33년 이상 페미니스트임을 자부해온 저의 하나의 응답”(8쪽)이라는 말이 이 책이 쓰인 관점을 알게 한다. 페미니즘이 다루는 ‘지금, 여기’가 개인들에게 다른 함의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처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론적으로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운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무엇을 먼저 개선해야 하고 그 방법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나이, 거주 지역, 결혼 여부 등에 따라 각론이 제각각이다. 이 책이 다루는 ‘피로감’의 문제는 스마트폰이 일과 관계의 중요한 도구가 되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부분이지만, 페미니즘과 관련한 피로감을 다루는 순간들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실천에 관심을 갖고 실행해본 사람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2015년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서’로, 여성들의 자기 정의가 급격히 변화했습니다.”(13~14쪽)라는 말은 지금 30대 이상 연령대의 ‘기성세대’ 여성들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로 이야기되는 2015년 즈음 10대, 20대였던 이들은 기껏해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기주장을 할 수 있던 기성세대 여성에게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이전’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알리바이를 내세우지만, ‘지금’이 처음인 이들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3장과 4장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인종, 젠더, 계급 등 복잡하게 진행되는 현실 속의 권력 작용을 분석하면, 여성 당사자를 뒷전에 놓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듣곤 합니다. 이러한 ‘여성 우선주의’는 페미니스트들 간의 여러 갈등을 낳습니다. 당사자성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곧 피해자 당사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고정적인 범주와 형태로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183쪽) 문제는 페미니즘 실천의 방법론에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 번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중을 받거나 권리를 누린 적이 없다. 정치권, 경제계 등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대표단의 성비는 5 대 5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 김현미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역시 하나의 방법론인데, 배제적이 아닌 포용적인 페미니즘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제언이다. 김현미는 “내가 스스로 참여를 결정하고 참여 과정에서 낯선 여성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관점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의 자율성과 개방성”(243쪽)이라고 설명한 뒤, 페미니스트 정의와 관련된 질문이 여성의 몸을 관통하는 폭력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인간종과 비인간종에 대한 폭력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페미니즘이라는 가치체계를 둘러싼 질문을 던지는 책에 가깝다. ‘라이프스타일’은 특정한 물건이나 행동 양식을 따라 하는 것으로 갖출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생명, 삶, 생활의 의미를 포함한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파괴, 폭력, 투기에 저항하는 매우 구체적이며, 급진적인 전략적 선택입니다.”(260쪽) “우리는 조금 더 개방적이며 너그러운 ‘협력적 자아’의 세계로 이동해야겠지요”(327쪽)와 같은 거대하고 모호한 결론이 더러 등장할 때는 책의 야심 찬 제목에 못 미친다는 인상이 든다. 연대하고 연결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좀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동시에 가능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다루지 않는 책 바깥의 페미니스트 간의 긴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답은 각자 찾아야 하지만 질문은 정확하고 예리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좌절, 고립감, 적대적 반응에 시달리는 페미니스트 개인들의 어려움을 정확히 진단하고자 하는 시도다. 장 말미에 강연 당시 오갔던 질의응답을 한두 개씩 실었는데,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선생님은 어떤 방식의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을 실행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페미니스트 동료 찾기의 중요성을 역설한 답변은, 페미니즘에 대한 수많은 글과 말의 존재 이유를 설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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