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섬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달보다 먼 곳』
[리뷰] 섬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달보다 먼 곳』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3.24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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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제주를 기록하는 시인 김수열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서 개인보다는 제주의 내면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개인 김수열과 제주는 분리되지 않는다. 시인은 제주에서 자리를 잡은 일화를 전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섬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자신이 값싸게 대학을 다닌다면 그 등록금을 섬 사람들이 내는 게 아닐까 하는 부채감이 발목을 잡았다. 시인이 섬을 벗어나는 대신 제주 곳곳을 돌아다녔던 이유는 이런 생각들 때문이었다.

4.3 사건을 마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촌로가 “유독 어느 지점에 가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제주의 아픔을 알고 있는 촌로들과의 만남이 시인에게는 삶의 축이 흔들리는 전회의 시기였다. 마당극을 통해 문화운동을 하던 시인이 시를 쓰게 된 것은 4.3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책에서 수록된 시 「섬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일」에서 현재 제주도가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곳은 또한 “무고한 양민을 수장한 학살터”였다고 울부짖는다.

시인에게 4.3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국가의 사과와 ‘제주 4·3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강정기지는 여전히 그와 제주민들을 괴롭히고 이념으로부터 놓아주지 않는 그 무엇이다. 「4.3이 평화라면 강정은 희망입니다」라는 글에서는 그의 평화와 희망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난다. 한때 몸담았던 제주 마당극 운동에 대한 소중한 증언도 털어놓는다(「‘제주 마당극의 회고와 전망’을 대신하여」). 먼저 가버린 친구 정공철과 최정완에 대한 느낌(「심방 정공철을 말하다」와 「멀리 있는 건 언제나 그립다」) 등의 글을 통해 역사 앞의 개인이 아닌 일상 속의 개인 김수열도 만나볼 수 있다.

시인은 책머리에 “책을 내면서 부끄러움이 앞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 글을 쓸 수밖에 없을 때의 제주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제주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오히려 더 망가진 채 황량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달보다 먼 곳』
김수열 지음 | 삶창 펴냄 | 336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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