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冊)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칼럼] “책(冊)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 독서신문
  • 승인 2021.03.2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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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며칠 전 지하철을 타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년 여성이 종이책을 넘기고 있다. 우연하게도 맞은편에는 종이신문에 눈을 둔 중년 남성이 앉아있다.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는 대부분의 승객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종이 냄새를 지하철에서 맛보다니. 기성세대 표현으로는 ‘대한늬우스 필름’이었고, 청년세대 표현으로는 ‘백만년만의 광경’이었다. 반가움에 말을 걸었다. “그냥 습관이에요. 짬 나면 읽는 편입니다” “세상사에서 멀어지는 듯해 신문이라도 읽지 않으면…”

디지털콘텐츠 전성시대에 팬데믹이 가세한 지 1년여. 종이는 무사할까. 출판사 관계자들은 우려만큼 상황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중견 출판사인 궁리의 이갑수 대표는 “종이가 주는 즐거움이 어디 가겠느냐”고 반문한다. 거리두기 덕도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원 다섯명으로 꾸려나가는 ‘걷는사람’ 출판사의 김성규 대표도 변함없이 매달 2권씩 책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반적인 독서율이 하락추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격년제로 실시하는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성인의 연간독서율(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52.1%이고, 독서량은 6.1권이었다. 2년 전인 2017년 조사 때보다 각각 7.8%포인트, 2.2권 준 수치이다.

디지털시대 종이책과 잡지는 올드미디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100년 전에는 뉴미디어였다. 지난 2월부터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계속되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의 전시회를 둘러보면 당시의 책과 신문, 잡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백석, 이상 등 당대의 작가들은 이중섭, 장욱진, 김환기 등 당대의 화가들과 작품집을 공유했다. 1939~1941년 발간된 <문장>이나 1955년부터 발간된 <월간 현대문학> 표지에는 김용준, 길진섭, 천경자 등 이름만 들어도 전율이 돋는 화백들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한다. 글은 그림에 영향을, 그림은 글에 영향을 주는, 요즘 말로 하면 공존이고 콜라보이다.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당대의 문장가인 소설가 이태준의 ‘책’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1941년 펴낸 산문집 『무서록』(無序錄)에 담겨있다.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이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 대한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기 때문이다.” 80년 전의 설파(說破)라고는 믿기지 않는 통찰력이다.

독서율이 낮아지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교육열은 최고지만 문해율은 바닥이라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전자도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게 단정할 사안만도 아니다.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 3년여만에 누적 회원 3백만명에 보유도서 10만권, 계약 출판서 1,000곳을 돌파하면서 독서계의 고래가 되고 있다. 밀리의 젊은 인재들은 “독서하지 않을 핑계를 없애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따지고 보면 과거 독서 캠페인은 관변 운동 성격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자발적 요소가 더 크다. 코로나19로 주춤하고 있지만 독서 모임은 이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독서모임 커뮤니티인 트레바리에는 책 읽기를 자청하는 젊은이들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서울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전 세계에 한국처럼 독서 모임이 활발한 곳은 없다고 얘기한다. 역사가 지속과 단절의 연속과정이라면 독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21세기를 읽기 위해서는 20세기가 필요하고, 2020년대를 말하기 위해서는 2010년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독서는 단순히 교양이 아니라, 일상사의 운동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 운동이 멈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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