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자본주의의 시녀에서 벗어나려면
인문학이 자본주의의 시녀에서 벗어나려면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3.22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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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코로나 시대의 대화법은 기존의 문법과 전혀 다르다. 대면하지 않고 통화와 이메일 등의 비대면적 수단으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한다. 자본주의와 정보화가 손을 잡으면서 인간 본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지만 현대인들은 오히려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연스레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지지만 자본주의와 결부된 인문학은 되레 불안감만 증폭시킨다.

서양고전학자이자 인문학자인 김동훈이 최근 펴낸 『인공지능과 흙』(민음사)은 인공지능 시대 인문학의 방향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서울대학교에서 로마 문학 및 수사학을 공부했고, 총신대 등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그는 현대의 인문학에 비판적이다. 책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현대는 지나칠 정도로 물질에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은 물질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만큼 다른 한편에 정신의 영역을 떼어다 놓고 그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돈에 집착하면서도 안 그런 척하며 교양과 정신의 각종 잡다한 보상재로 위선을 떠는 경우가 그렇다.”

그는 이런 괴상한 분열의 모습을 보인 환자로, 인문학을 지목한다. 가슴을 후벼 파는 얘기는 계속된다. “인문학은 명실상부하게 자본주의의 시녀가 되어 감당 못할 갑부가 되었다” “대중을 현실성 없는 상상의 세계에 가둬두고 마약과 같은 교양타령만 한다”.

『인공지능과 흙』은 이런 인문학에 대한 반성문이다. 그는 포스토 코로나 인문학의 새로운 키워드로 ‘물질’과 ‘감각’을 꼽으며 이를 폭넓게 ‘물질인문학’으로 규정한다. 2000년대 이후 환경문제, 생태위기, 불평등 등 전 지구적 문제들이 거세지면서 전통적 인문학과의 단절을 선언한 환경인문학, 생태인문학과 큰 흐름은 같지만 물질이 모든 존재물의 바탕에 놓여있다는 시각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궤는 다소 다르다.

저자는 몸을 경원시하고 정신에 천착하는 인문학이 아닌, 상상을 현실화하는 인문적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같은 흙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이다. 그는 “창조 신화를 만들어냈던 고대인들이 느끼는 흙과 가마에 넣어 그릇을 구워내는 도공의 흙, 배양기구 속을 들여다보는 식물학자가 느끼는 흙은 저마다 다른 상상을 품어낸다”고 말하며 흙이 주는 상상이 인공지능과 같은 현실의 물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추적한다.

예를 들어보자. 저자에 따르면 르네상스인들이 흑사병과 전쟁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신이 아닌 ‘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각종 생태 및 환경 보호 운동 역시 ‘지구의 몸’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핵심적 구성요소들이 정신만이 아니라 자연, 장소, 인공물, 기술 등이라 여기고 그 바탕에 ‘새로운 물질관’, 즉 ‘신유물론’(new-materialism)을 두었다”고 설명한다.

물질인문학을 바탕으로 코로나19에 의해 무너져 가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저자는 경계를 넘나들며,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는 능력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기 위해 지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머릿속에 이미지를 구상하듯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그러한 상상을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구체화할 때 비로소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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